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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1

고려거란전쟁이 건진 영웅은 양규와 지채문이다 이 두 사람 저 드라마가 아니었던들 언제까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부각했겠지만, 솔까 양규는 그나마 개설서에 이름은 잠깐 들이밀기는 하지만 지채문은 노답이었다. 실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두 사람 활약은 영웅적이다. 그 압도적 거란군 위력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40만 거란군을 상대로 흥화진을 사수하고 드라마처럼 곽주성을 천700명으로 탈환했으며, 회귀하는 거란군을 곳곳에서 요격해 공포에 빠뜨린 이가 양규다. 회귀하는 거란군을 상대로 7전7승인가 하고는 나중에 장렬히 산화했다. 그는 역사가 추앙해야 할 영웅이다. 지채문. 동북면 지금의 함경도 쪽에 배치되어 있다가 급보를 받고는 서경을 구원하러 갔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개경으로 곧바로 달려 내려가 몽진하는 현종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 2024. 1. 25.
왕 또한 마누라는 한 명뿐, 부묘祔廟의 중요성 전반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견주어 고려시대가 적서 차별 양상이 극심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상대성 이론이라, 견주어 볼 때 그리 보인다뿐이지, 고려시대라고 적서차별은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적서 문제는 결국 혼인 양태에서 비롯하는데, 더 구체로는 남자 한 명에 부인이 한 명인 1부1처제 때문이다. 한국사에서는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흔적으로 볼 때는 철저한 1부1처제 사회였고, 남자한테 부인은 같은 시기에 한 명이 있을 뿐, 복수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고려시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어서 이쪽도 철저한 일부일처제였다. 어느 인터넷 사전을 보니 "고려시대에는 두 명의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고 서자를 두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자를 적자와 다른 존재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2024. 1. 25.
사비시대 깊고 둥근 백제 철솥 정체는? 백제고도문화재단이 2017년 사비도성 동쪽 100미터 미만 산지 중 곡간 경작지에 해당하는 부여 석목리 농협주차장 부지에서 찾은 유물 중 사비시대 철솥이다. 뒤에서 개똥폼은 심상육이다. 이 철솥 이상하지 않은가? 엄청나게 깊다. 저기다 밥을 하거나 국을 끓였을까? 이건 고고힉도한테 물어선 답이 안 나온다. 첫째 한국고고학은 그런 물음을 물을 줄도 모르고 둘째 물어봐야 꿀먹은 벙어리를 면치 못하고선 고작 하는 말은 글쎄요? 밖에 없다. 고민을 해 봤어야지? 이건 주부들한테 물어야 한다. 저런 데다 밥 안 하고 국 안 끓인다. 미쳤니? 이 철솥이 출토한 유적을 다른 출토유물과 견주어 볼 때 이곳이 공방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조사단이 했다. 어떤 공방? 금속품 제조와 관련하는 도가니, 철솥과 화살촉.. 2024. 1. 25.
고려 시대 내내 한반도 밖에 위치한 울릉도 정광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울릉도와 독도가 이사부 정벌 이래, 그러니 신라 지증마립간 이래 두 섬이 죽 한국 땅이라 했지만 웃기는 소리라 놀랍게도 울릉도는 고려시대 내내 고려 땅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리만치 철저히 한반도 밖에 위치한 별도 문명 문화권이었다. 고려사 권58卷 志 권 제12 지리地理3 동계東界 울진현蔚珍縣을 이르기를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于珍也縣【고울이군古亐伊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으로 삼았다. 고려 때에 현(縣)으로 강등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置令]. 고 하고는 그에다가 울릉도鬱陵島를 첨부하기를 현縣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고, 무릉武陵 혹은 우릉羽陵이라고도 불렀으며 사방이 백리이다. 지증왕 12년(5.. 2024. 1. 25.
자작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기름 https://www.youtube.com/watch?v=uHpYwZ71jXg 이 동영상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서 기름을 짜내는 방법을 소개한 것으로 그 방식은 실로 간단해서 깡통 두 개와 장작불로 충분하다. 큰 깡통에다 자작나무 껍질을 잔뜩 채우고, 그 한쪽에다가 구멍을 뚫고서는 작은 깡통을 잇대어 땅을 파고 그 작은 깡통을 아래로 두고, 위로 노출된 큰 깡통 위로 두세 시간 장작불을 피우면 자작나무 껍질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아래 작은 깡통으로 흘러내리는 구조다. 위 큰 깡통 속 자작나무 껍질은 완전히 타서, 기름기를 빼낸 재에 지나지 않아 푸석푸석 바스라지니 버린다. 자작나무는 흔히 그것이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 해서 그리 일컫는다 하듯이 그만큼 그 이파리에는 기름기가 많다는 뜻이니, 그에다.. 2024. 1. 24.
여진 소굴로서의 울릉도 여진이 약탈경제 기반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래서 유목민 비스무리한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그네를 둘러싼 가장 큰 착란이 그들이 바다에 약할 것이라는 실로 막연한 생각이 점철하지만, 그들은 해전海戰의 명수였으며 이들보다 바다를 잘 이용한 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 면모는 고려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마는, 주로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삼국시대 역시 그에 못지 아니해서 동해안을 치는 말갈은 예외없이 바다를 통한 침략이었다. 신라가 북방으로 치고 올라가고 그곳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이 여진 혹은 말갈은 골치였으니, 동해를 주름잡은 그들의 해군력을 약화하고자 단행한 일이 바로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었다. 신라가 왜 우산국을 쳤는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당시 추세를 ..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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