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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6

역사를 통괄하는 남색男色 간단히 말한다. 이 경우 남색이란 남자 호모를 말한다. 《화랑세기》 얘기다. 이 화랑세기에는 남색이 적지 않게 나온다. 특히 법흥왕은 여자도 많았지만 남자 애인도 적지 않았다. 이 남색을 두고 화랑세기 진본론자이기는 마찬가지인 이종욱 전 서강대 총장과 나는 적지 않은 충돌을 일으켰다. 이종욱 선생은 단순한 총신寵臣으로 봤고, 나는 호모라고 봤다. 하도 열받아서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에서 호모 얘기 열라리 했다. 이종욱 선생과 내가 금이 간 여러 요인 중 작은 것에 해당한다. 졸저 출간 이후 《고려사》를 통독할 일이 있었다. 그 긴 《고려사》를 통독하다 보니 적지 않은 왕의 남자 애인이 등장했다. 심지어 그 남자 애인들의 족적을 보니 완연히 신라시대 화랑의 복사판이었다. 그리고 중국사를 통괄하니.. 2024. 1. 6.
김유신의 조카 반굴盤屈과 도삭산의 복숭아 김유신의 동생은 김흠순金欽純이다. 그의 아들 중에 급찬 반굴盤屈이 있다. 황산벌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반굴의 아들이 역시 보덕국 반란 진압에 나섰다가 전사한 김령윤金令胤이다. 령윤...꽃다운 혹은 아름다운 아들 혹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아비 반굴盤屈은 이름이 특이하지 아니한가? 한데 아무도 그 의미를 묻지 않았다. 내가 저 반굴이 하도 특이해서 족보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산해경山海經이었다. 현존 산해본에는 없다. 산해본을 인용한 다른 전적, 예컨대 왕충이던가? 그 일문逸文에서 등장한다. 추리면 이렇다. 동해東海에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에는 평원이 있는데, 그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다.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들은 서로 뒤얽혀 마치 문의 형상과 같았으며, 이곳을 통해 많.. 2024. 1. 5.
[독설고고학] 껍데기 너머를 보라 아침에 호로고루를 이야기했지만 거기 처음 간 때부터 나는 성벽 너머가 언제나 걸렸다. 물론 저 성곽이 한창 운용되던 천오백년 전 지표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저 넓은 땅을 가만 두지 않았으리라는 의구심이 언제나 증폭했다. 더구나 그 성벽 너머 땅은 현무암 지대고 홍수 피해가 거의 없을 만한 데였으니 저 땅에서 콩이나 조 수수 농사를 지어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곽? 뭐 대단하게 생각하나 실제 전쟁 몇 번이나 치렀을 거 같은가? 징발된 병사들 일년 내내 탱자탱자했다. 그러다 제대했다. 그런 친구들이 그렇담 평양에서 꼬박꼬박 보내주는 월급 타가며 생활했겠는가? 그럴 돈도 없었다. 거지였다. 그렇담 어찌 생활했는가? 지들이 농사 직접 짓거나 농민들 감독해서 그에서 나는 소출 일부 띵가묵고 살았다... 2024. 1. 4.
전쟁통에도 군인들이 쪽도 못쓴 조선왕조 지극히 당연하지만 전란의 시대는 군인이 활개를 치기 마련이고 평화의 시대는 군인은 쥐 죽은 듯 지내기 마련이다. 오직 예외가 조선왕조이거니와, 이 놈의 왕조는 어찌된 셈인지 임란 병란 양란에 전 국토가 초토화했으면서도 무인이 활개를 칠 수 없는 구조였다. 나는 이를 비정상적인 사회로 본다. (2016. 1. 2) *** 그렇다고 내가 군인정치를 추앙하는양 개설레발을 치지는 말아줬음 한다. 전쟁통엔 당연히 군입 입김이 쎄기 마련이고 그게 정상이다. 한데 유독 조선왕조가 예외라 고려도 한때 저랬다가 나라가 거덜났다. 2024. 1. 4.
[독설고고학] 연천 호로고루, 성벽을 벗어나야 호로고루가 보인다 연천 호로고루성이다. 보다시피 임진강으로 삼각형으로 삐죽하니 돌출한 곶에다가 한 쪽만 막았다. 나머지는 현장 가 보면 분명하지만 천애절벽이다. 좀 더 확대한 모습이다. 저 호로고루는 지금의 LH박물관이 토지공사 시절 그 박물관에서 연차 조사를 벌인 결과 고구려가 쌓고 이용한 군사기지로 드러났다. 잠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장기간 주둔하며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성벽 바깥 세상이다. 한국고고학은 성곽을 논할 때 단 한 번도 성벽 바깥을 생각한 적이 없다. 고작 배수로 운운한 게 전부였다. 성벽을 벗어난 저 바깥 세상. 저기는 뭐하는 곳이었을까? 이걸 고고학은 물어야 한다. 하도 갑갑하니 내가 대답한다. 농사 지었다!!! 둔전屯田이다. 아래 글에 대한 답변이다. *** previous ar.. 2024. 1. 4.
제도로서의 조선고고학, 그 위대한 설계자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흑판승미黑板勝美, 쿠로이타 카쯔미, 현행 외래어 표기로는 구로이타 가쓰미인 이 양반은 수십년래 내 화두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생김새는 조폭 두목. 제도로서의 한국고고학 조선고고학을 확립한 주축이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의 히말라야요 동양사의 후지산이다. 첫째..이런 그가 왜 그리도 고고학에 집착했는가? 둘째, 이런 그가 왜 그리도 조선에 집착했는가? 셋째, 이런 그가 왜 고적조사연구회를 꾸려 사방팔방으로 모금을 하러 다녔는가? 1915년 그는 도쿄제국대학에 출장 복명서를 낸다. 백일 동안 조선 각지를 조사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이었다. 실제 그는 그리했다. 그해 부여에 들른 그는 삽자루를 잡고는 능산리 무덤 두 기를 파헤쳤다. 왜그랬을까? 조선사편수회 회의록을 보면 모든 회의는 흑판이 주도한다. 모든 발제는.. 202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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