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908 [새한미디어](1) 호환마마, 그리고 영원한 제국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 이태원 단독주택이 228억원에 강나연 태화홀딩스 회장이라는 올해 41세 여성 기업인이 그의 11살 난 자식과 공동 명의로 샀다는 소식이 있었으니 이 소식을 죽 따라가다 보면 1976년에 지은 이 주택은 대지면적 1천73.1㎡, 연면적 496.9㎡,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본래 이 집 주인은 따로 있었으니 이 회장은 이 집을 2010년 9월 새한미디어 주식회사한테서 82억8천470만원에 사들였다고 한다.이에서 우리는 새한미디어라 해서 우리 세대에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는 생소하기만 한 기업을 만난다.이 새한 그룹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둘째아들 이창희 회장이 만들어 운영한 회사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왜 이 새한이 익숙한가? 지금은 그조차 사멸.. 2025. 9. 17.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자치통감과 그 강목 중국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같은 전적이 조선 초기에 금속활자본으로 다양하게 간행된 것도 눈에 뛴다.자치통감강목의 초기 간본은 1428년(세종 10)에 간행한 경자자본庚子字本과 1438년(세종 20)에 수양대군에게 활자 주조를 명하여 인쇄한 병진자본丙辰字本이 유명한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종대에 활자가 주조된 계축자癸丑字本도 남아 있다. 이처럼 자치통감강목이 다양하게 간행된 것은 송원대宋元代 이후 주자학이 체제교학體制敎學으로 정립되고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학자들의 필독서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은 자치통감강목을 애독하여 집현전 문신에게 훈의訓義를 만들게 하는 한편, 이를 간행하도록 명하였다.그리하여 1436년 진양대군(훗날 세조.. 2025. 9. 16. 군사 팽창주의는 모조리, 일부러 빼버린 실록의 세종 찬가 불교, 해동 요순海東堯舜 세종의 유일한 흠결 불교, 해동 요순海東堯舜 세종의 유일한 흠결세종 32년 경오(1450) 2월 17일(임진일)에 이도李裪가 숨을 거두니 이가 훗날 성군이라 추앙받는 조선 4대 왕 세종이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데는 궁궐이 아니라 아들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 historylibrary.net 앞선 저 글에서 전문을 인용한 세종에 대한 실록의 평에서 주목할 점이 여러 가지인데, 훈민정음 창제 이야기가 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일을 대단한 업적으로 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니 훈민정음 창제 의미는 훗날, 그가 죽은지 6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본격으로 부각한다. 물론 그가 임금으로 이룩한 업적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저 사론史論은 매우 정치적이라,.. 2025. 9. 15. 없어졌어야 하는 훈민정음, 그것이 살아남은 기적의 이야기 기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어 표기 수단이 공식 발명되기는 1443년, 세종 25년이며, 그것이 공식 반시되기는 3년 뒤인 1446년, 세종 28년이다. 이 시점이 왜 중요한가?온갖 반대를 무릅쓰고서 저 사업을 밀어부친 세종 이도는 반시 기준으로 불과 4년 뒤인 1450년에 훅 가버리기 때문이다. 권력층 어느 누구도 흔쾌히 찬성했다고는 볼 수 없는(실제 이를 열렬히 찬성한 사람은 쉬 눈에 띠지 않는다.) 이런 사업은 그것을 밀어부친 최고 권력자가 훅 가버리면 이내 없던 일로 흐지부지하고 만다. 이 점에서 저 훈민정음은 놀랍기 짝이 없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저 결정적인 핸디캡, 곧 그 절대의 사업추진자가 훅 가버렸음에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더 요상한 점은 반시와 더불어 국가적 사업으로 세종.. 2025. 9. 15. 불교, 해동 요순海東堯舜 세종의 유일한 흠결 세종 32년 경오(1450) 2월 17일(임진일)에 이도李裪가 숨을 거두니 이가 훗날 성군이라 추앙받는 조선 4대 왕 세종이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데는 궁궐이 아니라 아들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 집 별서였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세종실록 해당 날짜 기사다. 임금이 영응 대군永膺大君 집 동별궁東別宮에서 훙薨하였다.이 소식을 전하면서 사관은 왜 궁궐이 아닌 영응대군 집이었는지를 알릴 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했음인지 다음과 같은 협주狹注를 적었다.처음에 영응 대군 집을 지을 때, 명하여 한 궁을 따로 집 동편에 세워서 옮겨 거처할 곳을 준비하였다.적자로서는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은 봉작 명칭 변화가 많다. 태어나자 영흥대군永興大君이라 했다가 1447년, 세종 29년에 역양대군歷陽大君이라 고쳤다.. 2025. 9. 14. 삼각형 구도를 구사했다는 후쿠사이, 여차하면 인상파 역삼각형?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9월 16일부터 2주간 소개되는 작품 중 하나인이 '갑주 석반택甲州石班澤'야마나시 현을 흐르는 후지강은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이며, 이 작품은 후지강에 접한 가지카자와鰍沢 부근을 그린 것이다.강을 향해 뻣은 바위, 투망을 건져 올리는 어부, 그리고 투망 줄이 삼각형 구도를 만들어 멀리 솟아 있는 후지산과 같은 형상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후쿠사이는 이 형상를 만들기 위해 어부 뒷쪽에 아이를 일부러 그려 넣었고, 아이가 당기는 그물 역시 후지산과 같은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정확히 구도를 맞추고 있다. 어부 자세도 두 다리를 모아 엉덩이를 쭉빼고 숙여 그물을 힘껏 당기기 직전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후지산 정상 구도에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빠른 물살을 표현한.. 2025. 9. 13. 이전 1 2 3 4 5 ··· 48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