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867 여전히 오리무중인 로마 12면체 청동유물 이 미스터리한 로마시대 12면체 청동유물에 대해서는 앞서 두어 번 다룬 적 있거니와, 그 기능을 두고 계속 곤혹스러움을 더하는지, 라이브 사이언스 또한 이 문제를 정리한 아티클을 최근 게재했다. 로마 십이면체Roman dodecahedron: 수 세기 동안 고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불가사의한 12면체12-sided object 이 12면체에 오각형 면pentagonal-faced이 있는 이 청동 유물 기능에 대해서는 50가지가 넘는 이론이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아직까지 그 기능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름: 로마 십이면체정의: 12면체 청동 유물 출처: 로마 제국 북서부 지역 제작 시기: 서기 2세기~4세기로마 십이면체는 1739년 영국 중부 지역에서 12면체 청동 유물이 최초로 발견된 이후 고.. 2025. 7. 16. 아이를 울러매는 그 미묘한 차이, 그리고 구리거울 요새는 서양 문화가 침투하는 바람에 애들을 울러매고 다닐 적에 가슴팍 자루에다 울러매는 모습이 우리한테도 아주 자주 보이지만 몇 십년만 거슬러올라가도, 또 지금도 연세 자신 할머니가 손주를 볼 때는 저리 안한다. 가뜩이나 굽은 허리 저리 손주들 매고 다녔다간 진짜로 꼬부랑 할매 된다. 한국문화는 짐짝이건 아이건 뭐건 나발이건 전부 이 문화다. 등짝에 지는 문화다. 이건 아이를 앞뒤로 울러맨 서양 여성인데, 등짝을 맨 이유는 애가 둘이기 때문이지 딴 이유 없다. 정칙은 가슴팍이다. 곧 죽어도 한국 아이 업기 문화는 이거다. 포대기 둘둘 말아 등대기에 찰싹 붙여야 한다. 이것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다. 물론 한국문화에서도 앞짝에 치렁치렁 걸치는 문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 2025. 7. 15. 뱀 두 마리를 갖고 노는 아이 뱀과 놀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는 다색 테셀라툼 모자이크Polychrome tessellatum mosaic아마도 초기 기독교 모자이크일 것이다.대리석과 석회암 테셀라limestone tesserae 101 x 110cm - 시리아 또는 레바논에서 출토서기 5세기,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모자이크 조각은 동물들의 발굽이 나타내는 것처럼 맨 위까지 이어지고, 모자이크 오른쪽에는 그리스어 비문이 남아 있다. 긴 튜닉tunic을 입고 두 마리 뱀과 노는 아이는 이사야서(11:6-8) 한 구절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6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 2025. 7. 14. 얌나야 문화의 쿠르간 얌나야 문화Yamnaya culture 쿠르간kurgans은 장례 관습의 핵심 요소였던 거대한 무덤을 지칭하며, 이것은 그들의 사회 구조, 신앙, 그리고 이주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기원전 3300년에서 2600년경 폰토스-카스피아 대초원Pontic-Caspian steppe에서 출현한 얌나야족Yamnaya people은 개인이나 가족 무덤 위에 이런 쿠르간을 쌓았는데, 종종 고인을 엎드려 굽힌 자세로 안치하고 붉은 황토red ochre로 덮었는데, 이는 영적인 신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상징적인 물질이었다.토기, 무기, 장신구와 같은 껴묻거리가 일반적으로 포함되었는데, 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시사하고 매장된 사람들의 지위를 나타냈다.이러한 쿠르간은 매장지일 뿐만 아니라 영토의 표식이자 .. 2025. 7. 13. 풍납토성 청동초두와 창녕 교동 청동초두 앞선 풍납토성 을축년 대홍수 관련 소개에 지방을 떠돌다 소리소문없이 서울로 입성한 국립박물관 하계사 신광철 군이 경남 교동 11호분 출토 청동초두가 을축년 대홍수 직후 풍납토성이 대홍수에 노출한 그 청동초두와 똑같다는 보충을 한 바 경남 창녕 교동 11호분 출토 청동초두라 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노출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 있으니 이것이 문제의 그것이라 이를 소개하기를 명칭 경남 창녕 교동 11호분 출토 청동초두 한자명칭 慶南 昌寧 校洞 11號墳 出土 靑銅鐎斗 소장품 번호 건판005389 분야 고고 >가야 >유물 >금속 지역한국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건판 크기 소판 촬영 연도 1918 조사자/촬영자 촬영 당시 기록자료 추가정보 참고자료 『유리원판목록집Ⅰ』 , p.223 / 18030.. 2025. 7. 12. 을축년 대홍수 사망자 647명과 인구센서스 사망자 647명 쓸려간 집 6천 363채 무너진 집 1만 7천 45채 물에 잠긴 집 4만 6천 813채. 이재민 수만 명 피해금액 1억300만 원(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 58%) 이것이 조선총독부 공식 통계에 잡힌 1925년 을축년 대홍수 피해현황이다.무시무시했다.그해 홍수는 집중 타격지점을 달리하며 한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문젠 저 통계가 누락한 실상이다.당시 인구센서스가 있기는 했지만 누락이 너무 많았다.희생된 사람들은 주로 최하층이었고 그네 상당수는 공식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이른바 부랑인 비렁뱅이 등등 최최하층은 아예 이른바 호적도 없어 잡히지 않았다.왜 인구센서스가 저 모양인가?당시 조선은 선거가 없어서였다.정확한 인구센스스 절대 기반은 선거의 성립이었다.정확한 인구센서스는 .. 2025. 7. 12. 이전 1 2 3 4 5 ··· 4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