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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647명
쓸려간 집 6천 363채
무너진 집 1만 7천 45채
물에 잠긴 집 4만 6천 813채.
이재민 수만 명
피해금액 1억300만 원(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 58%)
이것이 조선총독부 공식 통계에 잡힌 1925년 을축년 대홍수 피해현황이다.
무시무시했다.
그해 홍수는 집중 타격지점을 달리하며 한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문젠 저 통계가 누락한 실상이다.
당시 인구센서스가 있기는 했지만 누락이 너무 많았다.
희생된 사람들은 주로 최하층이었고 그네 상당수는 공식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이른바 부랑인 비렁뱅이 등등 최최하층은 아예 이른바 호적도 없어 잡히지 않았다.
왜 인구센서스가 저 모양인가?
당시 조선은 선거가 없어서였다.
정확한 인구센스스 절대 기반은 선거의 성립이었다.
정확한 인구센서스는 1948년을 기다려야 했다.
따라서 저 희생자 숫자를 선거도입 이후 대참사 다른 사례와 일률로 비교해선 심히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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