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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468

오르페우스, 음악천재 그 기구한 이야기 오르페우스Orpheus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로마 모아지크 한 장면이라, 그 출처가 어딘지를 검출해 보니 다음이라 한다. Orpheus Floor Mosaic Roman, 3rd century Mosaic Antonio Salinas Regional Archaeological Museum, Palermo, Sicily Typical features of Orpheus iconography include the tree, the harp and plectrum, the Phrygian cap, and the birds and animals congregating to hear his music. 오르페우스 바닥 모자이크 로마, 3세기 모자이크 안토니오 살리나스 고고학 박물관, 팔레르모, 시칠리아 오르.. 2024. 8. 10.
난카이 해곡海谷, 태평양이 준 저주? 내가 무슨 거창한 지질학 조예가 있겠는가? 다만 그런 나도 지구는 판대기 몇 개로 구성되어 있고 그런 판대기가 이동한다는 대륙 이동설에 기초한 이른바 판구조론板構造論[plate tectonics]은 상당한 신뢰를 주는 편이라,저 까마득한 옛날 잠깐 인문지리에서 배운 그 구조론에 의거한 지질 이상 발생, 곧 가장 대표적으로 지진 발생을 보면 거의 다 맞아떨어지는 까닭이다.   그에 의하면 그런 판끼리 접합 혹은 갈라지는 지점에서 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는데, 저를 보면 엇나가는 경우가 있고, 서로를 향해 멀어지는 현상이 있는가 하면, 서로 부닥치는 경우도 있다. 저에서 각종 지질 현상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오죽 시끄럽겠는가?  지구 전체를 보여주는 주요 판데기라. 이를 보면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 거대.. 2024. 8. 10.
녹과의 쟁투, 1천600년을 버틴 인도 철기둥 흔히 델리의 철기둥 Iron pillar of Delhi 이라는 별칭으로 일컫는 이 쇠기둥은 찬드라굽타 비크라마디티야  Chandragupta Vikramaditya 2세(재위 서기 375~415년 무렵),가 만들어 세운 것으로, 놀랍게도 저 상태로 1600년을 버팅기며 질긴 생명을 자랑한다. 노출 상태 높이가 7,21m이고 기둥 뿌리 지름은 41㎝, 무게는 6톤가량으로 추정한다. 이 기둥 1.12m 부분은 땅밑에 있다.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저 철기둥은 녹을 버텨냈을가? 1998년 연구성과가 제출됐으니, 그에 따르면 저 쇳덩이는 이 철주에 녹이 슬지 않는 이유로 인phosphorus 성분을 들었다. 저걸 녹여 만들 때 인을 섞었다는 뜻이다. 인이라면? 사람 뼈나 조개 껍질에 많이 들어 있다는 그 원소 성.. 2024. 8. 10.
이집트학에 깊이 개입해야 이집트니 그리스니 로마니 하는 문화는 이쪽을 전업화해서 공부하는 사람들 독무대로 군림하는 가운데 몇몇이서 지들 필요한 자료만 속속 적출해서 간헐로 이용하며 실크로드 타령이나 일삼는 정도라 이걸로는 택도 없어 외려 저쪽과 전연 관련 없는 사람들, 저쪽 전문이 아니라 하는 사람들이 개입할 여지는 천지빼까리로 늘려 있으니 그런 까닭에 이쪽에서 적극 개입하며 기존 연구 흐름을 뒤흔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집트학 그리스학 로마학을 풍부하게 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한국학 보폭을 넓혀 세계사로 확대하는 길이다. 예컨대 장송의례 공부하는 사람들이 저짝을 보면 기가 차는 일 천지다. 如컨대 이집트를 보면 장례에 전문 곡소리꾼을 고용하는데 이게 조선시대에 그대로 통용한다. 이런 노다지를 가만둘 것인가? 첨부 사진은 이른바 아.. 2024. 8. 9.
영정, 그리스 로마 지배가 부른 이집트의 새 바람 이집트가 알렉산더 이래 그리스, 그리고 곧이은 로마 지배에 놓이면서 문화시스템도 일대 변화를 겪는데 개중 하나가 초상화 도입이다. 이 초상화 문화는 이전 이집트엔 없었다. 이때 초상이란 영정사진을 말한다. 저 초상 역시 영정이라 카이로 남서쪽 약 100 km 파이윰 오아시스 Faiyum Oasis 발굴품이다. 1911년 영국의 유명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 Flinders Petrie가 로마 시대 네크로폴리스에서 146개 미라를 발견한 이후 파이윰에 처음으로 등장한 온전한 미라 영정이다. 해당 미라는 이 초상화 아래에서 발견됐다. 사망 당시 17세에서 22세 사이 젊은 여성이다. 헤어스타일, 보석, 그리고 영정 스타일로 보아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통치 기간인 서기 175년 무렵으로 본다... 2024. 8. 9.
이강승이 회고하는 춘천 중도 발굴 고고부가 북한강으로 지표조사를 나간 것은 1977년 5월 초순이었다. 당시는 적은 인원으로 예산에 잡혀 있는 두 건의 발굴조사를 감당할 길이 없어 금강유역의 발굴조사는 송국리 집자리를 대상으로 하고 한강유역은 지표조사로 발굴사업을 대치하기로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손 모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 강인구 선생(당시 고고과장)은 일본 유학 중이고 사무실에는 30대 초반의 이백규(현 경북대) 이건무(현 고고부장) 한영희(현 전주관장) 제씨와 필자, 그리고 홍영선(호림박물관)씨가 전부여서 가능한 한 일을 덜 만들고 밀린 보고서를 써야겠다는 것이 당시의 현안 목표였다. 이백규 교수, 필자와 제도실의 윤희원(현재 설계사무소 근무)씨가 배낭을 메고 춘천을 향해 떠났는데 오월인데도 강원도의 날씨가 유달리 무더웠다. 춘천..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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