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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아주 훗날, 아주 최근에 생겨난 문중 우리는 족보를 보면서부계 가문의 "문중門中"이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문중"이라는 것 자체가 최근의 창작품으로 우리가 아는 그 문중 비스무리한 것의 연원을 따지자면 빨라 봐야 1800년대 초중반으로 그 이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문중"이 아니라, 족보를 만드는데 주동이 된 핵심 종족과 여기에 잠자코 따라가는 추동 종족, 그리고 이 족보에 이름 한 번 올리려는 기타 등등 종족 등이 있으며, 그보다 더 올라가면, 어느 한 집안을 중심으로 주변 부계종족만 간신히 기억하는 시점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 시점에는 후대의 같은 "문중"으로 인식하고 같은 집안 족보에 올리는 혈족들도서로 처음 만나면 같은 종족인지도 긴가민가 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는 바, 이는 어느.. 2026. 2. 20.
조선후기 족보의 역사적 의미 우리나라 서얼 차별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유교 때문에 서얼 차별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유교의 교조 중 종법에는 적서 구분이 엄중하니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서얼 차별 자체는 유교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고, 개인의 신분을 결정하는 데 부계와 모계 계보 모두가 영향을 미치던 시대 유습이 유교의 옷을 입은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족으로 성공하려면부계는 물론, 모계도 제대로 된 사족이어야지, 이 모계가 평민이거나 천민이면 아무리 잘난 아버지 자식이라도 반쪽 혹은 반반쪽 사족이나 심하면 노비로 편제되었으니, 이는 모계 신분이 개인에게 영향을 주던 유습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에 성립한 부계 계보의 경우에, 딸은 사위 이름까지만 적고 더 적지 않는.. 2026. 2. 20.
폭풍의 언덕과 젠트리 설날 가족과 함께 영화를 하나 볼까 하다가 고른 것이 며칠전 개봉했다는 폭풍의 언덕.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그럭저럭 볼만한 내용이었는데,영화에 담긴 내용을 유심히 보다 보면, 오만과 편견이 그리고 있는 사회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두 소설은 모두 18세기 초반의 산업혁명시대의 영국을 그린 것으로, 향촌사회의 재지 젠트리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데서 서로 닮아 있다. 이 젠트리 계급이야 말로 당시 신흥하는 계급의 역동성, 귀족과는 다른 부족한 교양에서 오는 천박함, 평민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 등등 18-19세기 한국사회를 생각할때 의미 있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느낀다. 따지고 보면 레미제라블의 대략 100년 전 정도의 이야기인 바, 산업혁명의 결과 노동자 계급.. 2026. 2. 17.
종친 서얼에 대한 처분: 그 막대한 의미 조선시대 종친 서얼에 대한 처분의 사회사적 의미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는데,앞에서도 썼지만 조선시대에는 종친의 경우왕으로부터 4대까지는 서얼도 모두 정식 사족으로 독립시켰다. 적자와 차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 사족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대접을 받는 것으로, 4대까지 내려가는 동안 서자의 서자의 서자, 3대 서자의 후손도 잘만 사족으로 성공적으로 독립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태종의 의사가 강력이 반영된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 자신의 서녀인 옹주를 하가하려했는데 여기 대해 시큰둥하게 반응하여 어떻게 아무리 왕의 자손이라 해도 서녀를 며느리로 맞냐고 했던 집안 하나가 태종의 노여움으로 박살이 난 적이 있다. 그 후 아무리 어머니가 미천하고, 왕으로 부터 이미 3대, 4대가 내려왔다 해도왕으로 부터.. 2026. 2. 16.
낮에 일하느라 졸려서 시를 못짓고 잔다는 지선생 언젠가 소개한 하재일기를 계속 읽어내려가고 있는 바, 이 일기를 쓰신 지선생-. 낮에는 생업인 공인의 일을 하느라 바쁘다. 대궐에 물건 대랴, 물건 주문하랴, 돈 계산하랴, 어음 발행하랴, 물건 대금 지불하랴, 물건 대금 받으러 다니랴. 그릇 보내달라고 하고는 돈도 안주는 양반 비위마추기 등등하루종일 하는 일을 보면 딱 요즘 비즈니스맨의 그것이다. 이 양반은 그렇게 바쁘게 보냈지만 시 짓기에 조예가 있어, 차운을 받아와 시를 지어 그것을 자기 일기에 남기기도 했다. 과거에 미련이 있어 식년시 증광시 별시가 열리면 수시로 응시한 것 같지만, 번번히 떨어져 아마도 과거제가 사라질 때까지 번듯한 벼슬은 못하신 듯하다. 이 양반 일기를 보면, 그 바쁜 와중에 차운을 받아와 시를 지으려다가 낮에 너무 피곤해서 그.. 2026. 2. 14.
한국근대사는 17세기를 분명히 구분해야 언젠가 필자는 한국근대사에는 마치 일본고대사처럼 "이주갑인상론"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나 있었던 일을 마치 17세기부터 있었던 것처럼 소급시켜 언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17세기 이후 화폐경제,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고 기술하고는 정작 그 예로는 18세기 후반 이후, 늦게는 19세기의 사례를 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18세기 후반도 19세기도 17세기 이후인 것은 맞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필자가 보기엔 17세기에 우리나라에는 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겠다. 한국근대사는 조선후기사를 기술할 때 이런 식으로 두리 뭉술하게 기술하면서 17세기부터 19세기를 하나로 묶어 설명하지 말고, 17세기는 18세기와 분명히 구분해서.. 202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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