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필자는 한국근대사에는 마치 일본고대사처럼
"이주갑인상론"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나 있었던 일을 마치 17세기부터 있었던 것처럼 소급시켜 언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17세기 이후 화폐경제,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고 기술하고는
정작 그 예로는 18세기 후반 이후, 늦게는 19세기의 사례를 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18세기 후반도 19세기도 17세기 이후인 것은 맞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필자가 보기엔 17세기에 우리나라에는 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겠다.
한국근대사는 조선후기사를 기술할 때 이런 식으로 두리 뭉술하게 기술하면서 17세기부터 19세기를 하나로 묶어 설명하지 말고,
17세기는 18세기와 분명히 구분해서 기술해야 한다.
18세기 중후반 이후에나 보이는 사실을 17세기 이후라는 기술로 한데 묶어 놓으니
우리나라는 인조, 효종, 현종 때 벌써 화폐경제, 상품경제가 흥한 것 같은 착시를 주는데,
우리나라에 이러한 변화는 빨라야 18세기 중반이고 그런 변화가 정착한 것은 19세기나 되어서이다.
따라서 조선근대사는 이주갑인상이 되어있다고 필자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선후기사를 기술할 때, 17세기 이후, 18세기 이후 등
"이후"라는 말을 쓰며 17세기를, 18세기를 19세기와 슬쩍 묶어
독자를 착각하게 만드는 이런 기술은 더이상 쓰면 안된다.
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 17세기면 17세기,
18세기면 18세기 분명히 기술해야 하고,
19세기의 예를 들었다면 17세기 이후라는 표현은 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17세기에는 필자가 보기엔 이 시기까지 우리나라는
일기로 보나 호적으로 보나,
노비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자급자족체제가 아직 주류였던 사회이지
화폐경제 상품경제는 아직 출현의 싹도 보이지 않던 시대이다.
17세기 이후로 적어 놓은 변화가 사실은 18세기 중후반 이후에나 나타나니
그러니 이주갑인상 아니고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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