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2) 서자들이 싫어 차린 딴집 살림 흔히 서원이 난립하게 된 이유로, 사족들이 향교의 교육에 불만이 있고, 훌륭한 스승 밑에서 성리학을 도야 할 만한 공간을 원해서 성립하고 어쩌고 이렇게 알듯모를 듯한 이유를 대지만,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 애가 독서실 간다고 하겠는가?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원군이 서원 철폐 때 통렬히 비판한 바 있으니, 서원 철폐를 도로 물려 달라는 향촌 사족들 요청에 대원군은,너네는 향교에서는 공부 못하는가? 라고 공박한 바, 통렬한 비판이라 하겠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향교에서 양반들이 박차고 나가 서원으로 모인 것은향교에 모여든 서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바로 17세기 초반, 각종 문헌에 "교생"이라고만 직역이 적히는 이들로, 양반들이 "놀고 먹으며 향교에 등록해서 군역 빠질려는 놈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들을 지..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1) 향교를 박차고 나선 서원 흔히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기세등등한 전통사족의 기세를 꺾은 것으로 평가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림의 대두 이후 사족들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원군이 철벽 같았던 금성탕지金城湯池를 공격했던 것은 아니다. 대원군은 다만 이미 백여 년에 걸쳐 꾸준히 힘이 빠진 이들 서원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세력에 대해마지막 한 방만 선사했을 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서원을 중심으로 한 사족, 이라고 이야기하지만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집권한 경화사족의 적수는 도저히 아니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지방의 향촌 사족들은 요즘 이야기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을 보유한 적이 없었고,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과는 언감 생심, 소과도 생원이나 간신히 걸리면 되는 정도의 집안.. 2026. 5. 27. 만만하지 않은 서자들-노상추 일기의 백미 사실 노상추 일기 외에도 부북일기 등 조선시대 당시 출신군관의 일기는 처음이 아닌지라, 노상추 일기는 그 일기에 써 있는바, 영남사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 이것 때문에 뜬 듯 하다. 부북일기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성과의 염문에 대한 기록으로 졸지에 유명해 진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실 부북일기의 저자들이 당시 다른 사족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성적으로 분방했던 이들도 아닌듯 한데일기에 그만 덜컥 그 이야기를 남겨 유명해져 버렸던 것처럼, 노상추 일기에서 쓴 것처럼 당시 영남지역이 유독 차별을 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 근교의 사족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우리 역사에서 볼때 이 지역 사족들이 대거 중앙에서 활동한 16세기가 비정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노상추.. 2026. 5. 26. 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만인소 연명 서명자들 앞에서 만인소 이야기를 한 번 썼는데 좀 더 써 본다. 만인소라는 것이 소두라는 사족 어르신이 있고, 이 사람 발의로 서원과 향교에 통문을 보내 사족들 서명을 받아 완성된다. 흔히 만인소라는 것이 백성의 소리 어쩌고 하지만, 이 만인소가 요즘처럼 무슨 서명 좌판 깔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 서명 받아 제출하거나인터넷 서명받아 국민청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인소 서명은 서원과 향교(주로 서원)를 타고 내려갔고, 여기 서명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기 서명한 사람들은 앞에도 썼지만, 청금록 향안에 이름 올린 사람들과 대개는 겹치는 인물들로, 향촌에서 나름 힘 좀 쓴다는 전통의 호프, 사족들이 되겠다. 이 사람들이 만인소를 쓴 즈음에는 18세기를 넘어 이미 19세기라앞에도 쓴 것처럼.. 2026. 5. 26. 생원 진사는 요즘으로 치면 딱 명문대 졸업 포스 생원 진사는 요즘으로 치면 어떨까? 딱 명문대 졸업 포스 정도 된다고 할 것이다. 무과는 사관학교 졸업 정도 포스일 텐데,조선 후기 들어 원래 수십 명 뽑아야 할 무과를 몇백 명 심지어는 천 명씩 뽑아 급제를 시켰으니, 조선 전기와 후기의 무과 급제의 포스는 영영 달라지게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후기 들어 오군영이 반직업 군인화하면서이들 군영 장교들을 무과 급제시켜 달랜 듯한 정황도 많이 보인다. 조선후기 무과는 그래서 딱 요즘은 사관학교 졸업 정도 포스다. 문과는 어떨까. 문과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과거 고시 포스였고, 일제시대까지도 고등문관시험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등문관시험은 뽑는 숫자도 많지 않아아마도 식민 치하 우리 조상님들은 이를 조선시대 문과처럼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마찬가지로 일제.. 2026. 5. 26. 생원보다는 역시 진사 조선후기 들어오면 사마시, 소과 입격자들도서울은 진사가 더 많고, 향촌에는 생원이 더 많은 현상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문중별 통계를 보면, 서울에 살지 않고 향촌에 세거한 종족일수록 생원이 더 많다. 이는 생원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것으로진사가 더 쉬웠다면 아마 향촌에서도 진사 입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진사가 이처럼 생원보다는 더 선호되었기 때문에 흔히 향촌에서 우리집안은 삼대 진사요, 사대 진사요 이렇게 소개하지 삼대 생원이요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 향촌에서 몇대 진사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경우 대개 진사와 생원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진사와 생원은 사마시에서 같은 수를 뽑았음에도 향촌 사족의 족보에는 생원이 확실히 더 많다. 물론 진사건 생원이건 간에 대과 보는 데는 차이가 없.. 2026. 5. 26.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10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