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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토지겸병이 지주전호제의 증거인가 필자는 앞에서 쓴 대로 우리나라는 지주전호제 성립이 상당히 늦다고 본다. 이유는 18세기 전기까지도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토지 경영이 양반 경제의 기초라거기에 지주전호제가 파고들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역사에서 지주전호제의 성립 근거로 겸병의 역사를 들고 오는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hm/view.do?levelId=hm_082_0080토지겸병과 지주전호제는 같은 것이 아니다. 토지겸병을 하여 대규모 토지를 확보한 후 거기에 완전한 인신 예속 상태인 노비를 동원하여 경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선 중기까지도 토지 겸병으로 대규모 토지를 확보한 양반들이 그 땅을 소작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 2026. 5. 24.
율곡은 이 바보 같은 제도가 문제임을 몰랐을 리 없다 앞에서 챗 지피티가 똑똑하게도 알려준 것처럼 평민이 줄고 노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군역의 파탄, 국방의 부실을 의미한다. 여말선초에 국난의 위기속에 사전혁파, 과전법이라는 황당하다면 황당할 수도 있는 극약처방이 먹힌 것도 결국 평민이 줄고 세금 낼 이가 줄어드는 데서 오는 위기감이 발로였다 할 것이다. 일천즉천은 처음에는 노비소유자이기도 한 양반들이 자신의 땅을 경작할 노비를 안정적으로 보충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해를 거듭하고 세대를 거듭하면 전 인민이 노비화해서 세금 낼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수도 있고, 복잡한 계산은 딱 질색인지라 거기까지는 추정을 못 했을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똑똑하기로 다섯손가락안에 .. 2026. 5. 24.
18세기 중반 변화의 수학적 추론 앞에서 필자가, "조선왕조의 양대 악법,서얼금고와 일천즉천一賤卽賤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천민)의 원칙은 18세기 중엽 영조시대를 거치며 빠르게 무력화했으리라 추정한다. 그 시점에서 이 두 법이 무력화되지 않았다면 19세기의 호적과 같은 신분제의 변동은 결코 일어날수 없다. "라고 한 바, 쉽게 말해 18세기 들어 서자 중 금고되지 않고 적자와 다름없이 신분이 유지되는 사례가 급증하고,부모 중 한 쪽이 노비여도 노비로 떨어지지 않고 평민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변칙적 사례가이 시점에 크게 늘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홍길동이 홍길동이어도 호형호제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며, 서자가 적자 뺨치게 행세하는 빈도가 급증하고, 노비 자식이 이미 노비가 아는 사례가 이 시점에 급증해야 19세기와 같은 .. 2026. 5. 24.
홍길동이 만들어지는 한 절대로 줄지 않는 노비의 수 소위 말하는 홍길동법, 아버지가 아무리 잘나도 부모 중 한 명만 노비면 자식은 자동적으로 노비가 되어 홍길동이 만들어지는 조선시대의 법. 이 법이 살아 숨쉬는 한 어떤 제도의 개편이 있어도 절대로 노비 수는 줄지 않고 계속 늘어간다. 노비 숫자만 늘어갈 뿐 아니라 평민 숫자도 역의 상관관계로 같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홍길동 법은 세금을 내야 할 사람 수를 계속 줄어들게 만드는 악법이다. 홍길동법이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뜯어고쳐도 무조건 노비는 늘게 되어 있고, 10대 정도가 지나면 정확히 전 인구 절반 정도 숫자가 노비가 되는 데 이르게 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조선시대 인구구조는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수학의 영역이다. 조선시대 18세기 초반 경 전체 인구 절반 정도가 노비가 되었던 시점.. 2026. 5. 24.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노비 종모법從母法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조선시대 신분제를 거칠게나마 챗지피티로 시물레이션 해 볼 수 있다. 이건 챗지피티에 몇 가지 조건만 설정하여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결론만 간추려 말한다면 조선시대에 노비 숫자를 줄이는 것은, 노비종모법을 그대로 놔두는 한 어떤 방법을 써도 노비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비종모법은 노비가 한 번 되면 정말 특이한 일이 없다면 혼인만으로는 노비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신분제의 어떠한 개혁을 해도 노비종모법을 놔두는 한은 노비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조선시대 호적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당시 매우 일부분 지역 호적만 남아 있다. 그러면 여기만 노비만 많고 다른 지역은 덜 했을까? 노비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2026. 5. 23.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3) 서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무라이들 하타모토는 원칙상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디자인한 정국 구상에서는)막부와 쇼군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맞는 일이었다. 물론 이에야스는 지방을 지배하는 번도 신판, 후다이, 도자마 다이묘로 나누어 쇼군과의 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지역을 달리하여 배치하여 막부에 대해 적대적 번은 저 멀리 구석에 쳐박아 두고 요소요소마나 친막부적이며 절대 쇼군을 배신하지 않을 만한 번들을 배치해 놓았지만 이런 그랜드 디자인은 그야말로 디자인일 뿐으로 정작 이에야스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 예측한 도쿠가와 막부판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이라 할 메이지 신정부와의 보신 전쟁이 시작되자 막부편을 들어야 할 친위세력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일본의 개항 이전, 메이지유신 이전의 상황을 보면 눈에 띄는 구석이 있으니, 막부의 .. 202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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