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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노상추 일기: 서얼에 대한 공포 노상추 일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서얼에 대한 공포다. 이 시기는 영조말-정조 연간에 해당하는데 서얼들은 적자 후손들에게 족보에서 "서자"라는 말을 빼 줄 것을 요청하는 바, 눈치를 보면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강제하면서, 압박하면서 이를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노상추 일가는 서자라는 말을 그대로 족보에 계속 써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라 마지막 순간까지 족보에서 이를 관철하려 하는데, 서자 쪽에서는 노상추 일가에게 찾아와 족보의 원고를 찾아 자기들 계보에서 서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이를 면전에서 공박하며 갈 때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들고 가버리는 것이다. 노상추 일가가 두려워 하는 것은 서자라는 기록을 족보에서 빼버렸을 때자신의 집안이 적장자에서 밀려날 것에 대한 공포, 그.. 2026. 2. 6.
어느 집안의 경우: 다양한 백그라운드 족보에 대해 전혀 모르지 않는 분들이 답답하게도 우리 집안은~ 이라 하며 족보의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로 믿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집안이 명문 집안이고 자신의 계보가 그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자신이 명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어느 집안에 여말선초에 모두 18개 지파가 성립되었다.라고 그집안 대동보는 설명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족보를 변천을 탐구하여 보면 실상은 다르다. 17세기 초반에 성립한 가장 이른 시기 족보를 보면 지금 현재 후손이라 하는 18개 지파 중 단 9개만 확인된다. 나머지 9개 지파는 모두 그 후에 추가된 것이다. 이 추가된 스토리는 다양하지만 그 이야기를 모두 다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처음 족보에 들어.. 2026. 2. 4.
족보의 구조, 성립사가 중요하다 족보는 개인이 무슨 벼슬을 했고 이런 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날조일 수도 있고 과장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족보에서는 이런 개별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대동보 성립의 과정, 그리고 족보 전체의 구조이다. 대동보는 그 성립과정을 수백년에 걸쳐 추적하면, 그 집안 족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하였는지 비교적 상세히 규명이 가능한데 (물론 이것도 17세기 부터 정기적으로 족보가 편찬된 집안의 경우이다)이 족보의 성립과정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고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족보에서 서자라는 이름이 빠져 나가는 과정은당시 기록, 일기 등에도 관련 사항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어떤 문중 족보를 보면 통채로 그 구성원이 동일한 집안으로생각 하지만 필자가 누차.. 2026. 2. 4.
노상추 일기를 읽기 시작하다 논문 쓰는 데 필요한 자료가 없을까 해서이다. 노상추 일기는 논문으로만 접했을 뿐 아직 통독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해 볼 생각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채종일 교수님, 지우인 단국대 서민교수와 함께 준비하는 고고기생충과 기생충의 진화에 대한 책이탈고까지 10프로 정도 남았다. 이 책은 Springer에서 출판하기로 이미 계약이 되어 있다. 채종일 교수님께서는 연세가 70대 중반이신데 여전히 노익장이시다. 2026. 2. 3.
아들 다섯 중에 4명이 적자, 1명이 서자라면? 그리고 한 번 서자가 되면 그 아래 후손들은 모두 서얼 금고로 묶어 버린다면, 4대가 내려가면 "적자후손"과 "서자후손"은 각각 몇 명이 될까? (계속 다섯 명씩 낳고 그 중 네 명이 적자라는 것을 전제로)해답은 적자가 256명, 서자가 369명이다. 불과 4대만에!! 이 차이는 대가 올라갈수록 점점 커져서, 5대째가 되면 적자가 1024명, 서자가 2,101명이 되어 차이가 1000명 가까이 벌어진다. 8대째가 되면 적자가 65,536명, 서자가 325,089명이 된다. 사람들이 아들 다섯을 낳아 그 중 한 명만 서자로 만들어도 이렇게 숫자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서얼금고를 영구화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조선시대-. 처음에는 서자 몇 안되니 저 후손은 영구적으로 금고시키자고 생각하고 묶어버렸을 것이다.. 2026. 2. 1.
서자와 노비는 조선후기사의 뜨거운 감자 필자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우리나라 조선후기인구 전체에서 노비와 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 본다. 필자가 보기엔 거의 90프로 가까운 인구가 노비와 서자에 포함될 것이라 보는데 이는 18세기까지도 각종 호적의 기록, 그리고 서자의 숫자에 대한 당대 인물들의 증언에서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앞에도 썼지만 우리 집안은 명문 사족, 우리는 양반집안 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도 태반은 서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서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한 번만 서자가 중간에 조상 중에 끼면그 집안은 서출이 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양반으로서 퇴락하여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 다시말해 조상 중에 한 번만 서자가 나오면 그 이후 줄줄이 금고되어야 하는..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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