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선시대 호적 이야기까지 할 때가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듣는 분들 반응이 대개 일정하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모두 흥미로와한다.
조선시대 족보에 가짜가 많다.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그렇게 많았다더라,
이 정도 이야기는 요즘도 사람들이 다 아는지라,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매우 흥미로와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좀 더 진행하여
어떻게 조선시대 사람들이 족보를 위조하는지,
어떻게 가짜 족보에 올린 자기 조상들을 대대로 벼슬 받은 양반으로 둔갑시키는지
그 방법을 호적 이야기를 섞어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영 불편해지며,
이야기가 18세기 초반까지도 우리나라 당시 노비의 숫자가
그때까지도 무려 전체 인구 절반이 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백프로 화제는 다른 화제로 바뀐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족보에 대해 자신이 없다.
족보에 뭐라 써 놨건 간에 그게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는 누구나 있으며,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노비가 그렇게 많았다던데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집 서재 한구석에 꽂힌 저 족보라는 물건이 과연
사실을 얼마나 담고 있을까 의문스러운 것이다.
아주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태이다.
심지어 양반 집안이라고 자임하던 사람들도 방심말기를,
우리나라 양반숫자의 절반은 서자였고,
이들은 그 집안에서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못받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우리나라 조선후기사는
이렇게 불편한 역사는 다 제외하고
명명백백한 사실은 전부 눈 감아 버리고,
듣기 좋은 이야기,
그래도 만족할 만한 이야기만 긁어 모아 그려 놓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사교과서에
근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자본주의 맹아가 싹트고,
근대적 사유가 꿈틀그렸다는 그 시기에
우리나라 전 인구의 절반 넘은 사람들이 노비였다.
흔히 노비를 농노 혹은 머슴과 같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보는데,
천만의 말씀.
조선의 노비는 토지와 분리하여 팔아버릴 수 있는,
서양사 기준으로 보면 노예였다.
농노가 아니라.
땅과 무관하게 맘대로 잘라 가족과 유리하여 팔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신분은 미국 노예 해방전의 흑인 노예와 하나도 다를 것 없다는 말이다.
필자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런 뻔 한 사실에 눈을 감고 써내려간
한국 근대사, 한국 민중사, 민족사
전부 다 허구라는 말이다.
이 노비 문제에 대해 직시하고,
한국 사학계 역시 이 부분을 역사 교과서 전면에 내 놓고 서술하고
그 해방과정을 정확히 이야기 하지 않는 한
(지금은 양반층의 급증이라는 소리로 대충 버무리고 있다. )
한국 근대사는 절대로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한국근대사, 자본주의 맹아론, 자생적 근대화론에 집착하고 이를 주장하면서도
항상 마음 한 구석에 과연 그럴까 생각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니,
족보를 들고 있으면서도 그걸 믿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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