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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조선시대의 방목과 호적, 그리고 족보 조선시대 향촌 질서를 보여주는 3대 자료라고 한다면 첫째는 과거 입격, 출신, 급제자 프로필을 모아 놓은 방목榜目, 둘째는 국가가 작성하고 유지한 호적, 그리고 마지막은 문중이 써내려가고 출판한 족보가 되겠다. 이 세 가지 자료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다른 듯하면서도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우선 뻥을 쳤다가는 모가지가 날라갈 수도 있는 엄정함이 있는 기록이 바로 방목이다. 과거를 보면서도 사기를 쳤다가 적발되어 경을 치게 되는 기록이 간간히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호적과 비교해도 방목은 과거 합격자와 그 조상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맘대로 뻥을 치기 어려운 엄정함이 있다고 해야 할까. 호적에도 유학幼學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 이들도 방목에는 한등 낮추어 한량閑良이라고 적어 두는 경우도 있다. 호적은 .. 2026. 1. 13.
끼어든 후손 잊어버린 조상 우리는 족보의 변개變改라 하면 후대에 어떤 이유든 끼어든 후손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상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고려사에 나와 있는 인물들 이 들 중 상당수는 후대의 어떤 문중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김부식-. 이 유명한 고려 전기의 문신집안은무신정변때 극심한 멸종을 당했는지지금 어떤 집안의 족보에도 김부식과 그 후손은 나와있지 않다. 김부식을 경주김씨라고 하지만 정작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부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이런 예는 꽤 많이 보여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들 중 분명이 이 집안 사람인데도정작 그 집안 족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왜 인가 하면, 우리가 보는 지금의 족보라는 것이 빨라 봐야 15세기, 늦으면 17세기나 되어야 계보가 수.. 2026. 1. 11.
조선의 선비가 왜 그렇게 행동 했는가를 보고 싶거든 눈을 들어 그들의 노비와 땅을 보게 하라. 우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규범이성리학적 철학, 역사관,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들 보라고 쓴 정치회고록 같은 일기를 빼면나날의 일상사를 적어 놓은 일기들을 보면, 그런 철학, 역사관, 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대학자들도 마찬가지로 다산 같은 당시의 일대 거장도 은밀한 편지에서는 너희는 절대로 서울 뜨지 말라고 아들에게 타이르는 것이니, 우리가 사건의 고비마다 나오는 조선 선비들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이를 점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생 80년에서 이렇게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온전히 움직일 수 있는 시기는 딱 20대뿐이다. 그래서 조광조의 죽음에 항의한 청년 사류들의 조선판 .. 2026. 1. 11.
여말선초- 왕씨는 왜 사라졌는가 고려시대가 5백년을 지속했으니 그 종친 숫자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이 왕실 종친은 비교적 세계가 뚜렷해지는 고려말 세계를 상고해 보면당시 한다 하는 집안들과 얼키고 설키어 조선 전기처럼 지배층의 혈연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말 선초의 격동을 넘어 살아 남은 당시 현달한 집안들은 족보를 보면개성왕씨와 혈연관계가 있는 집안이 많다. 그런데 조선 건국 이후 알다시피 왕씨는 거의 사라졌으니이처럼 집안 자체가 소멸하다시피한 것은 여말선초 사실 개성왕씨 외에는 없다. 나머지 고려에 충절을 지켰다던가 아니면 두문동에 들어갔다던가 하는 집안들은 대부분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우니,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은 정몽주 길재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신왕조 벼슬을 받았다. 마치 조선이 망할 때 세족 .. 2026. 1. 8.
노비, 서자, 모칭유학의 이야기가 없는 조선후기사 필자가 볼 때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주인공은 모칭유학, 서자, 노비들이다. 이들이 성장해 나오면서 조선의 강고한 지배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시스템을 지주-전호제라고 보는 것은 조선사회가 자유민을 기반한 양천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19세기 이전에는 이런 시스템이 지배적이었던 적이 없다. 지주-전호제가 조선사회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등장한 것은 호적을 보면 잘해야 19세기 초반 경으로,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 조선사회 생산양식 중심에 있었고, 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양반이었다. 따라서 양반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노비사역이 무너지면서부터이지지주-전호제가 무너지면서부터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비, 서자, 모칭유학은 조선후기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음이 분명한데도,이들.. 2026. 1. 5.
제도적으로 양산되는 서얼들 여기서 서얼이라 하면 사실 조선후기에 서자와 얼자가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얼자는 당연히 천민으로 자기 아버지의 노비로 가내노예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평민 처의 자식인 서자의 경우,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복잡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본인은 양반의 후손이라는 강렬한 의식이 있었고, 족보에도 서자라 적힐 망정 이름 석자가 올라가고, 호적에도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름이 적히지만, 대개 일반적인 양반들보다는 하나 아래의 업유, 업무 등 직역을 받았다. 비록 한 단계 떨어진다 해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직역은 유학과 무과를 수련하는 것이 직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당연히 양반 끄트머리에 해당하고, 군역은 지지 않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들을 향촌중..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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