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11 족보와 제사, 귀성 추석이 눈앞이라 조금 써 보면, 우리가 전통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족보, 제사, 귀성은그 전통이 제대로 작동하던 시대에는 이런 것 제대로 있지도 않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19세기 이전에는 족보도 없었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고 귀성은 더더욱이 없었다는 말이다. 추석과 설날을 상징하는 이 풍습과 전통은 모두 빨라야 19세기, 늦은 것은 20세기 중반이나 되야 한국인들의 실생활에 파고 든 것이다. 족보는 심지어는 사대부들도 17세기 초반까지도 제대로 된 게 만들어지지 못했고 우리가 아는 대동보는 빨라야 19세기 후반,그 나마 대부분은 일제시대나 되어야 제대로 수단되어 각 문중별로 발간된 것이고 제사? 유교적 풍습에 입각한 제사와 친영례등 주자가례에 기반한 풍습들은16-17세기가 되어서야 사대.. 2025. 9. 30. 대동보는 망각과 타협의 결과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 특정 문중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가공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집안이나 흔히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리는 문중의 옛날부터 뭔가 대동보 비스무리한 족보가 있어이것이 확대되면서 지금의 대동보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족보도 사람의 기억의 산물인지라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어 있고내 주위는 많이 알고 멀어지면 모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족보라는 건 결국 망각과의 싸움이라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하나도 기억이 남지않는 것은 옛 어른들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 문중으로 알던 사람들은 아닌데 수백년 전에 갈려 나간 동족이라고 하여 족보에 이제부터라도 적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수백년 전 조상의 후손들이니 수.. 2025. 9. 30. 족보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우리나라 족보는 1600년대 초반만 해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그 족보를 편찬하는 이들 주변은 그나마 봐 줄만 하지만 여기서 멀어질수록 소략하거나 빠진 것이 많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동보와는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같은 본관의 문중이라 해서 전체를 아우른 대동보가 출현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로 그전에 우선 이런 형태의 계보들이 출현하다가 점점 이런 계보들이 연합하여 보다 확대된 형태의 족보들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 평산신씨의 계보를 보면 시조인 신숭겸 부터 11세까지가 단계로만 내려오는데 이는 이 집안이 여말선초 때까지만 해도 체계적으로 문중의 계보가 정리되던 것이 아니라 직계조상의 계보만 정리하여 가승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나마 이 집안은 이런 계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 2025. 9. 29. 문중은 어떻게 덩치를 키우는가 우리나라 각 문중은 어떤 조상에서계속 자손들이 번창해서 커지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닌듯 하다.이건 어느 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대개 몸집이 아주 큰 문중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은데 문중이 덩치를 키울 때 우리는 족보를 수단할 때 이름을 새로 넣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실제로 큰 기여를 하는 게 원래 서로 별개 문중이었던 사람들이 우리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지했다고 합의하고 같은 문중 우산 아래로 모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금 수십만씩 문중 사람들을 거느린 경우대개 이렇게 여러 개 같은 성 문중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갈려나갔다고 생각하고한 문중 별개의 파로 새로 정의하고 세계도를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문중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면 원래 분적한 집안이 다시 원대 복귀하는 형.. 2025. 9. 29. 족보에 기재된 처가의 정보 족보에 실린 사실을 교차검증할 제 3의 사료가 있다면예를 들어 당시의 호적이라던가, 이런 일급 사료가 있다면족보의 사실을 考訂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렇게 족보의 진위를 판별할 만한 자료가 많지 않다. 조상이 아주 유명해서 사료에서 쉽게 검증가능하다면 모르겠는데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그나마 족보에서 쉽게 그 당시 조상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 할 방법은처가 쪽을 보면 안다. 조선시대 계보에서 사회적 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 부계 당사자의 관직이라던가, 뭐 이런 사실들 같지만 이런 건 공명첩 등이 있어 위조까지 하지 않더라도 쉽게 업그레이드가 되기 때문에부계 관직으로 이를 살펴보기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집의 사회적 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가에.. 2025. 9. 28. 공자와 맹자의 사대부: 씨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도 원론적으로는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말씀하신 바 사대부는 씨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씨가 있었다면 공자도 맹자도 모두 결격자다. 사대부는 그 의지와 행동이 결정한다. 일본을 보라. 메이지 유신기, 자기 몸을 초개 같이 던진 "사무라이"들은 거의 모두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미안한 하급무사 출신이거나 아니면 심지어는 농민 중에서 나왔다. 이들이야말로 당시 수백 년 동안 막부로부터 대접 받아가며 사무라이로 자임한 상급무사들 보다 훨씬 사무라이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기, 구한 말 19세기의 시기-. 평민과 심지어는 노비에서 성장해 나왔을지도 모르는 소위 "모칭 유학"들-. 이들이 당시 "사대부의 품성"을 갖추지 않았으리라고 우리는 장담할 수 있겠는가? 2025. 9. 26.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