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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조선후기-급증하는 서얼들 조선시대 서얼은 안개에 갇힌 산봉우리다. 훨씬 거대하지만 안개 속에 은폐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서얼 숫자는 훨씬 많았다. 왜 그런가-. 서얼은 어떤 이의 아버지의 서자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서자인 경우도 손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며, 증조할아버지가 서자라도 그 증손에 영향이 미친다. 조선후기의 서자라는 것은 중간에 서자가 하나만 끼어 있으면 그 자손들은 그 영향을 받게 되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조선시대 어떤 양반의 적자와 서자는 대략 1:1 정도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아래로 2대, 3대, 4대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자의 차별이 단대에 그치게 되면 1:1은 유지되겠지만, 만약 2대, 3대 내려가도 그 선대의 서자란 신분이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주.. 2026. 1. 4.
노력해도 되지 않는 나라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소위 잔반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원래 신분이 평민 내지는 천민이었다가 각고의 노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을 양반 비스무리한 것으로 상승시키는 이들을 제외하고 보면, 원래 양반 계급이었다가 세대가 뒤로 가면서 점점 신분이 하락하여 결국 우리 학계에서 말하는 잔반이라는 것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기가 살아가며 뭔가 큰 잘못을 한다던가(역모라던가 아니면 재산을 탕진한던가) 하지 않는다면멀쩡하던 양반이 잔반화 한다면 아래 둘 중 하나이다. 첫째는 선대 누군가가 서자인 경우이다. 원래는 서자가 되고 나면 당대에만 제한을 받고 그 다음대가 되면 직역을 유학으로 부여해도 좋다고 했지만이건 말뿐인 것으로 선대에 한번 서자가 되고 나면 그 아래.. 2026. 1. 4.
전주이씨가 경상도에 드문 이유 (2) 앞에서 전주이씨가 경상도에 드문 이유는 조선왕조 개창 이후 전주이씨의 종친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과전법 체제를 타고 퍼져나간 까닭이 아닐까 생각 혹은 의심한 바 있었다. 과전법 체제에서는 왕자, 왕의 형제, 왕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伯叔]로, 대군大君에 봉한 자는 300결, 군君에 봉한 자는 200결을 지급했다. 그리고 부마로서 공주의 남편[駙馬尙公主者]은 250결, 옹주의 남편은 150결을 지급하였으며, 그밖의 종친도 등급에 따라 각각 차등 있게 지급했다라고 했다. 이 땅이 얼마나 넓은가 하면, 과전법 체제에서 관료의 경우 가장 넓은 땅을 받은 이가 150결이었다. 따라서 대군, 군, 부마, 옹주만 해도 관료 중 최고등급 관료와 동일하거나 두배 가까운 땅을 받은 셈이다. 조선시대에 1결이 대개 가로 세.. 2026. 1. 1.
조선시대 선비는 노비와 토지가 만든다 이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조선시대 선비를 만나는 것은 왕조의 기록, 야사 등 사기록물들, 그리고 문집 등을 통해 주로 만나는 탓에, 그 기록에 남아 있을 리가 없는 노비나 토지를 우리는 가끔 잊는다. 조선시대 선비는 성리학이나 명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노비와 토지가 만들었다. 성리학이나 명분이 없이도 선비는 살 수 있지만, 노비와 토지 없이는 못사는 것이 조선시대의 이들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조선시대 역사를 대한다. 조선시대 오백년 동안 내내 나라를 괴롭힌 위기론의 정체도 결국은 노비와 토지 때문에 나온 것이고, 조선사회의 해체도 역시 선비들의 경제적 기초였던 노비와 토지 농장들이 해체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족보에도 노비나 토지는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지만, 노비에 대해서만큼.. 2025. 12. 30.
왕조의 재정과 종친 이건 아직 필자가 확증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에서 종친에 대해서는 그 경제적 지분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되어 있다. 조선시대사가 당쟁 중심의 정치사, 성리학 도통을 중심한 학맥사에 집중하다 보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여러 성이 경합한 다양화한 사회라고 보기 쉬운데, 필자가 대략이라도 본 바로는 경제적으로나 뭐로나 종친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 종친은 출사가 금지되어 정치적 발언이 위축된 탓에 이들의 경제적 비중까지 잊기 쉬운데실제로 이들은 조선시대 초기와 중기까지 정부의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조선은 왕족에서 갈려 나가면 적자는 물론 서자까지도 관리하며몇 대 동안 출사하는 대신 소위 품위유지를 법적으로 해주고 있는 상황이.. 2025. 12. 30.
감동이 없는 우리의 가족사 예전에 "뿌리"라는 미드가 있었다. 우리 어릴 때 했던 미드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가 있었다. 그 여파가 한국까지도 퍼져 우리나라도 "쿤타 킨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쿤타킨테 손자가 "치킨 조지" 그리고 그 "치킨 조지" 고손자 뻘 되는 이가 작가인 알렉스 헤일리다. 이 가족사도 물론 뭐 뻥이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우리의 족보 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디테일이 있고 솔직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라면 알렉스 헤일리 집안은 진작에 족보를 사서 정승집 자손으로 분식했을 것이다. 그렇게 너도 나도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다 보니 집안 가족사에 디테일이 없고 무엇보다 감동이 없게 되어 버렸다. 족보를 보면 조상님들은 무슨무슨 벼슬을 지냈다고 하지만나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는 족보가 되어 버린 것이 ..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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