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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내재적 발전론이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 필자가 대학 다닐 무렵 화두는 한국근대사의 내재적 발전론이었다. 광작, 자본주의의 맹아, 화폐경제 등 내재적 발전론을 뒷받침하는 많은 이론들이 이 시기에 양산되어 나왔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부터 무려 4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때로는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을 반영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왜 그럴까. 사실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의 모습과 한말 조선의 모습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기 김 단장께서도 쓰셨지만 필자 역시 소위 내재적 발전론의 화폐경제와 자본주의 맹아론은 아직도 확신하기 어렵다. 좀 더 냉정하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다. 언젠가 썼지만, 이제는 한국인이 바보라고 보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없다. 좀 .. 2025. 2. 16.
[의학/질병사] 18세기 후반의 에도시대... 오장육부가 잘못임을 알다 18세기 후반, 우리 영정조 시대에 일본에서는 의사들의 사람 해부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막부는 사형수들의 시신에 대한 의사들 해부 허가를 내주었는데, 당시 전통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이 해부에 참여한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네덜란드의 해부학 교과서가 번역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해체신서"이다. 우리는 이 책 하나만 알고 있는데사실 당시 일본 의사들 중 해부를 해 본 사람은 꽤 많았고, 어떤 해부학서 저자는 세 번을 해부 해보고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 해부는 1700년대 후반 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졌다. 당시 서구의 해부학서가 사람의 실제 구조와 똑같은 것을 목격하고 충격받은 스기타 겐파쿠가해체신서를 번역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 2024. 12. 31.
한국사와 일본사는 왜 달라졌는가 필자 같은 아마추어의 이야기가 역사의 거대시각에는 유용할 때가 있을 것이다.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산을 못보는 법이다. 여산진면목이라 했지 않나. 한국사와 일본사는 처음부터 같은 농경사회를 포맷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고분시대-아스카 시대까지는한국사회를 복붙한 것이 일본사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우리는 이를 심상하게 봐서는 안된다. 신채호가 조선역사상 이천년래 대사건이라 하고 묘청의 난을 들었지만 사실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사건이 한국사에는 있었는데 우리는 전시과체제와 과전법 체제를 신왕조가 수립한 후문란해진 토지제도를 정비한 사건으로 간단히 처리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 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사전이 광범하게 퍼진 것.. 2024. 11. 25.
맞는 이야기이긴 한데 [김성근 칼럼] KBO에 고언, 프리미어12 어떤 사명감으로 나갔나최강야구 몬스터즈 감독으로 선수들에게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 지지 말자, 창피당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너희들 모두 스물다섯 여섯 살 때 대한민국 베스트멤버였다.sports.khan.co.kr야신 김성근 선생이 한국야구를 질타하며 프로야구 최대 가치는 돈이 아니다. 사명감 그리고 명예다.라 했다. 하지만 냉혹히 곱씹으면 요즘 통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요즘은 대학도 이 논리로는 설득이 어렵다. 차라리 네가 재미있어 선택한거니까 돈은 신경끄고 공부를 해라라고 하면 모를까. 명예나 사명감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닌 듯. 이런 흐름을 잘못되었다고 질타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어떻게든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 2024. 11. 25.
아무거나 들고 나오는 "~~학"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대해 ~~학이라고 붙인 것이 많다. 퇴계학이라던가 율곡학이라던가 다산학이라던가 그런 것들이다. 이런 ~~학에 대해 좀 써 보자면, 퇴계나 율곡이나 다산이나 대학자인임이 분명한 분들이라 이에는 이의가 없는데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퇴계학, 율곡학, 다산학들을 간판으로 걸어 놓고 쓴 글들을 보면정말 별의 별 글들이 다 있고이런 글들이 이 양반들 정체를 파악하는데 심히 방해가 된다. 가장 문제는 이 양반들 글에 나와 있다고 해서 이 분들 주장은 이러이러한 것들이라고 현양하는 것들인데, 따지고 보면 이 양반들이 그런 이야기는 처음 한 이야기도 아니고유학자라면 한 번씩 으레 다 찔러보는 이야기를 퇴계, 율곡, 다산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는 현양을 하는 것이다. 필자 같은 제3자 관객이.. 2024. 11. 24.
쉽게들 생각하는 "근대적 사유" 개항 이전 근대적 사유가 조선에 이미 있었다는 주장은 따지고 보면 시장경제의 맹아가 이미 조선 후기에 싹터 올라오고 있었다는 주장만큼이나 식민사관 타파를 간판으로 내건 한국사학에 있어 중요한 사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필자 생각은 이렇다. 조선이 만약 개항 이전에 제대로 된 근대적 사유, 아니 그 싹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었으면한국은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식민지화를 피해 근대화의 길로 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인과 한국사는 그 정도의 역량은 있다는 것을해방 이후 70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이 부분은 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조선은 개항 이전 그 최소한의 근대적 사유도 없었기 때문에19세기 말 부랴부랴 근대도 아니고 전통도 아닌왕조를 엎기는 엎어야겠는데 ..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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