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553 [독설고고학] 연천 호로고루, 성벽을 벗어나야 호로고루가 보인다 연천 호로고루성이다. 보다시피 임진강으로 삼각형으로 삐죽하니 돌출한 곶에다가 한 쪽만 막았다. 나머지는 현장 가 보면 분명하지만 천애절벽이다. 좀 더 확대한 모습이다. 저 호로고루는 지금의 LH박물관이 토지공사 시절 그 박물관에서 연차 조사를 벌인 결과 고구려가 쌓고 이용한 군사기지로 드러났다. 잠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장기간 주둔하며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성벽 바깥 세상이다. 한국고고학은 성곽을 논할 때 단 한 번도 성벽 바깥을 생각한 적이 없다. 고작 배수로 운운한 게 전부였다. 성벽을 벗어난 저 바깥 세상. 저기는 뭐하는 곳이었을까? 이걸 고고학은 물어야 한다. 하도 갑갑하니 내가 대답한다. 농사 지었다!!! 둔전屯田이다. 아래 글에 대한 답변이다. *** previous ar.. 2024. 1. 4. 답답한 자가 우물 파는 한일 관계사 한일관계사의 경우, 일본이 그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경우를 본다. 답답하다. 일본 연구자들이라고 맨손으로 연구하겠는가? 그 쪽도 전부 연구비 타서 연구한다. 일본에서 돈 줄 쥔 사람들이 미쳤다고 한국이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는 스토리에 연구자금을 지원하겠는가? 그쪽도 자기들 역사에 금칠 할 수 있는 스토리를 원한다. 그러니 야요이문화 연대도 올라가는 것이고, 쌀농사가 양자강에서 왔다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한일관계사, 특히 고대 한일관계사의 경우, 야요이 문화와 일본 고대국가 성립기까지의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답답하다면, 그 연구는 이쪽에서 해야 되는 거다. 저쪽이 아니라. 2024. 1. 4. [독설고고학] 보루에서 왜 쇠스랑 보습이 나오는가? 서울시가 설립한 공립박물관이라는 이름에는 실로 어울리지 않게 유물 실물을 확보하지 못해 온통 짜가로만 채우는 복제 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한 켠에 전시품이라 해서 내어놓은 짜가 쇠스랑과 보습이다. 뭐 실물이야 다른 데 가 있다 치고! 저 쇠스랑은 하남 이성산성 출토품이라 하고, 보습은 광진 아차산성 출토품이라 한다. 같은 짜가 코너. 쇠보습은 구의동보루 출토품을 복제했다 하고, 저 쇠가래도 같은 지역 출토품이라 하며 쇠집게는 홍련봉 2보루 출토품을 복제했댄다. 묻는다. 산성에서 왜 저런 유물들이 출토하는가? 한국고고학이 왜? 를 물은 적 있는가? 맨 유형학이니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정작 가장 중요한 왜? 를 묻지 않았다. 왜? 이걸 파고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딜 팠더니 무슨 유물이 어디에서 나왔고,.. 2024. 1. 4. 상징조작, 이른바 달항아리의 경우 한자 壺는 짐작하다시피 호롱박 모양 기물을 본뜬 글자다. 이런 호 종류로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대표 백자 기종으로 대호大壺라 이름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글자 그대로 항아리형 중에서도 대따시 큰 것을 지칭한다. 하지만 얼마나 큰것을 대호라 할 것인지는 미술사가들이 멋대로 정해서 높이 사십센티 이상이라는 준거가 대체로 통용하는 실정이다. 대호라 하지만 조선 당시에도 이렇게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기능 또한 오리무중이라 나같으면 요강으로 쓰겠더라. 한데 그 명칭과 기능이 무엇이건 이 대호가 이십세기 들어와 느닷없이 조선미의 상징 중 하나로 등극했으니 이를 어느 시점인가 달항아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달, 개중에서도 보름달과 연동하기 시작한 이는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라 알려졌거니와, 그.. 2024. 1. 4. [오늘의 한마디] 구순을 맞은 각목 토기 한국고고학이 구순각목토기와 우각형파수부호의 병풍 뒤로 더는 피신할 수는 없다. (2015. 1. 4) *** 족보도 없는 일본말 찌꺼기 섞어가며 그게 무슨 대단한 전문성인양 자랑하는 꼬라지 역겹기 짝이 없다. 2024. 1. 4. 제도로서의 조선고고학, 그 위대한 설계자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흑판승미黑板勝美, 쿠로이타 카쯔미, 현행 외래어 표기로는 구로이타 가쓰미인 이 양반은 수십년래 내 화두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생김새는 조폭 두목. 제도로서의 한국고고학 조선고고학을 확립한 주축이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의 히말라야요 동양사의 후지산이다. 첫째..이런 그가 왜 그리도 고고학에 집착했는가? 둘째, 이런 그가 왜 그리도 조선에 집착했는가? 셋째, 이런 그가 왜 고적조사연구회를 꾸려 사방팔방으로 모금을 하러 다녔는가? 1915년 그는 도쿄제국대학에 출장 복명서를 낸다. 백일 동안 조선 각지를 조사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이었다. 실제 그는 그리했다. 그해 부여에 들른 그는 삽자루를 잡고는 능산리 무덤 두 기를 파헤쳤다. 왜그랬을까? 조선사편수회 회의록을 보면 모든 회의는 흑판이 주도한다. 모든 발제는.. 2024. 1. 4. 이전 1 ··· 1801 1802 1803 1804 1805 1806 1807 ··· 409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