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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 동교東郊 : 위응물韋應物 吏舍跼終年 出郊曠淸曙 楊柳散和風 靑山澹吾慮 依叢適自憩 緣澗還復去 微雨靄芳原 春鳩鳴何處 樂幽心屢止 遵事跡猶遽 終罷斯結廬 慕陶眞可庶 (편집자주- 필자는 번역을 안 했지만 저 시는 대강 다음과 같이 옮길 만하다.) 벼슬살이 평생토록 매달리다 탁 트인 교외 나가니 맑은 새벽 버들솜 부드러운 바람에 흩어지고 푸른산에 내 근심 담담해지네 숲에 기대 자적하며 쉬면서 시내 따라 왔다갔다 하네 가랑비 꽃 핀 들판에 자욱한데 봄 비둘기 어디서 우는지 은거하려 했지만 여러 번 막히고 공무 따르느라 여전히 바쁘기만 하네 벼슬 그만두고 이곳에다 집 지으면 도연명 동경하는 삶 이루어지겠지 위응물은 오랜 공무를 마치고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려 한 모양이다. 새로 집을 마련할 곳을 보니 산도 들도 마음에 딱 들어서 여기다 집지어 살면.. 2024. 1. 21.
[독설고고학] 훼기毁器, 왜를 포기한 참상(1) 모르겠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재연구원)이 펴낸 한국고고학 사전 시리즈 중 하나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을 보면 훼기毁器라는 항목을 설정하고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훼기는 제사 또는 장사를 지낼 때, 그릇이나 공구·무기 등을 용기나 도구 등을 깨뜨리거나 구부리는 등 의도적으로 훼손시켜 충전토나 봉토, 주구 등에 매납하거나 뿌리는 습속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행해진 습속의 하나이다. 무덤에서의 훼기습속은 선사시대부터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부석시설에 파편의 토기편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이후부터 무덤을 만들거나 또는 매장 후에 제사를 지내면서 물품을 파쇄하는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삼국시대 무덤의 봉토와 주구에서 이.. 2024. 1. 21.
우리가 없는 것, 우리만 있는 것 요즘 와서 내가 부쩍 자주 쓰기 시작하는 말이다. 우리는 조상이 물려주지 않은 것으로써 원망한다. 피라미드가 왜 없는가? 만리장성이 없는가?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 우리만이 있는 거, 이것을 계발해야 한다. 나는 온국토가 우리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지만 이걸로는 장사가 아니되니, 요즘 들어 매양 드는 보기가 갯벌이다. 그러고 어느 포스팅에서 격발했지만 종묘!!!! 이거 제대접 받지 못한다. 이 건축물은 오직 우리만이 보유한 세계의 유산이다. (2014. 1. 21) *** 치기 어린 혈기방장만 난무하던 시절에 긁적인 단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이 한국에만 있는 것 아니겠는가? 치기를 증언하는 한 좌표로 찍어둔다. 2024. 1. 21.
발굴보고서 발간 2년 강제화, 그 의미 과거 문화재보호법, 그리고 현재 그에서 분리한 매장법, 더 정확히는 그 시행세칙인지로 기억한다만, 발굴은 완료한지 2년안에 보고서를 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있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는 사문화하다시피 했지만, 이를 정말로 법적으로 강제화하기 시작한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를 처음 도입할 적에는 반대 일색이었다. 그 내막을 이해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보고서를 제때 내지 않는 발굴 기관과 발굴자는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믿음, 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2년이라는 기간도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한 차례 연장을 하는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지만, 발굴완료 후 2년 안에 보고서 강제화에 나 역시 생각보다 더 깊이 관여했다. 내 신념이 옳다는 믿음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 2년안에 .. 2024. 1. 21.
도굴을 부른 후장厚葬(1) 박장薄葬과는 상대적이다 인류문화사를 보면 박장薄葬과 후장厚葬을 둘러싼 오랜 논쟁이 있었다. 같은 유가 윤리로 무장한 사회라 해도 이를 둘러싼 생각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 달라지기도 했으니, 조선시대는 대표적인 박장 지향 사회였다. 내가 볼 땐 뭐 묻을 것도 없어서 그랬겠다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면 또 달랐으니, 묵자시대에 그가 이끄는 교단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중국 전국시대를 보면, 묵자 교단은 박장을 내세우면서 후장을 선호하는 유가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박장이란 무엇이고 후장이란 무엇인가? 죽은 사람을 땅에다 묻을 적에 각종 껴묻거리를 덕지덕지 넣어 쑤셔박는 시스템을 두터울 후厚에다가 장사지낼 장葬자를 써서 후장이라 하며, 그에 견주어 최소한의 그릇 몇 개 정도만 넣.. 2024. 1. 21.
와당과 이형토기異形土器 사이, 배기동 굴욕사건 70년대 중반, 아마도 76년 무렵으로 기억하거니와 당시 서울대박물관에서 석촌동 발굴조사를 했다. 3호분인가 4호분을 배기동 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이 팠다. 그 무덤앞 아마도 조선시대로 치면 정자각 같은 제사 부속 건물이 있었다. 거기에서 한성백제시대 와당 1점이 튀어나왔다. 크기는 손바닥만하고, 거기에는 생판 보도 듣도 못한 문양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성백제에 기와? 개소리였다. 더구나 와당? 역시 개소리였다. 배기동 선생이 당시 보고서에다가 이 와당을 소개하기를 이형토기異形土器 라 큼지막하게 썼다. 나는 선생님 만나면 지금도 이걸 갖고 놀린다. "와당도 모르는 양반이 무슨 선생질하세요?" 그때마다 선생은 시대의 한계를 논하지만 어쩌리오. 이것이 숙명인 것을... 그래서인가? 한때 백제고고학..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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