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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는 있는데 말은 없는 이상한 초나라 거마갱 중국 호북성에서 또 다시 전국 시대 초나라 중기 무렵 귀족 거마갱车马坑이 발견됐다 하거니와, 대체 이 친구들은 언제까지 이런 걸로 장사해 먹는가? 파도파도 끝이 없다. 일단 땅은 넓고 봐야 한다. 암튼 이르기를 최근 호북성 당양当阳이라는 데 있는 안파 묘지晏坡墓地라는 데를 호북성문물고고연구원湖北省文物考古研究院에서 발굴한 듯 이에서 초나라 거마갱이 드러났다 하거니와이 거마갱은 말은 동쪽, 수레는 서쪽에 배열하는 방식이며 3대 수레와 2개마리 말을 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다.저 첨부 사진이 뚜렷이 보이듯이 수레는 3대인데, 말은 꼴랑 두 마리만 보인다. 말 두 마리가 석 대 수레를 끌었다는 말인가? 보통은 수레당 말 몇 마리를 놓아야 하는데, 아까워서 두 마리만 희생했을까? 아니면 무덤 만드는 과정에서 부.. 2025. 3. 4.
산서성 태원 한나라 벽돌묘에서 이상한 납 당로当卢 이런 중국 고고학계 발굴 소식이 있는데 저 당로当卢가 대체 무엇인지 언뜻 와 닿지 않는다.암튼 근자 태원시 문물고고연구원이 2022년 7월부터 11월까지 산시성 제2인민병원 신축 건물 부지에 포함된 태원시 소점구小店区 정촌 묘지郑村墓地를 발굴한 결과 왕망시대 혹은 동한 시대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M2를 포함한 유적들을 팠다 하거니와 이곳은 주산舟山 능선 앞 충적대지로 각 시기 무덤 23기를 확인했으니 M2는 개중 유일한 전실묘砖室墓 벽돌무덤으로 드러났다. 이 무덤은 경사 묘도斜坡墓道를 갖췄으며 남북 장축이라 먼저 흙을 파내서 구덩이를 만든 다음 벽돌로 묘도 말고도 묘문, 전실[앞방] 그리고 후실[뒷방 안방]로 구성된다. 시신은 당연히 안방에 안치했다. 껴묻거리는 15점이며 개중에는 도기 10점이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30] 남방 초나라의 자연 환경 앞서 서한시대 군현의 인구밀도에 대한 지도를 위와 같이 포스팅 한 바 있거니와 이 지도에서 눈에 띄는 바는 역시 전국시대 초나라가 위치한 남방의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시 남방의 상황은 어떠했던 것일까? 이 정황을 짐작케 해주는 역사 기록이 있다. 당시 양자강 유역은 거대한 사파리 셀렝게티 공원이나 다름 없었다. 양자강 중류에는 운중대택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는 당시 남방 귀족들이 자주 사냥을 나갔던 모양으로 그 모습이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墨子·公輸》: 「楚나라에는 雲夢大澤이 있으니 犀, 兕, 麋, 鹿이 가득하다」《戰國策·楚策一》: 「楚王이 雲夢大澤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말 네 필을 묶은 수레 千乘에 깃발은 하늘을 덮었고 들불이 일어나 구름무지개 같은데 兕와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9]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최근 포스팅하는 김 단장님 글을 보니 이전에 게시한 아래 글은 조금 숙고가 필요해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겸 약간 고쳐 다시 포스팅한다 [필자 주].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들었다. 마왕퇴 한묘도 베리에이션의 측면에서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야 한대 목곽묘에 당.. 2025. 3. 4.
[무령왕릉] 냉침대를 좋아한 왕과 왕비 어제 새삼 김규동 관장한테 전화로 물어봤다."그렇담 말이오 익산 쌍릉에서도 웬간한 모습으로 관짝이 나왔는데 거긴 바닥 있습디까?내 기억이 확실치 않습니다.""있다마다요. 무령왕릉은 왕도 그렇고 왕비도 모조리 바닥이 없어요."더는 물을 필요도 없다.금송으로 만든 관짝 남은 양태 보면 아주이주 잘 남아서 바닥만 쏙 다 썩어 문드러졌을 가능성 제로다. 그 남은 관짝 상태가 얼마나 좋은가 하면 조유전 선생 증언이 유감없이 증명한다."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관재를 밟았더니 끄떡 없었다."그랬다.무령왕과 그 왕비는 관짝에 바닥이 없었다.맨땅에 두 분 다 등때기를 대셨다.두 분이 냉침대를 좋아하셨나 보다. *** previous article ***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의 폭탄 선언 "관짝에 바닥이 없다!"ht.. 2025. 3. 4.
저리 잘라서는 다음해 농사를 못 짓는다! 흔히 반달모양돌칼 반월형석도 쓰임새로 제시하는 이 그림 그만 하려 했더니 도저히 열받쳐서 안 되겠다. 저딴 식으로 나락을 뜯으면 이듬해 나락 농사를 못 짓는다. 나락 농사를 지으려면 거름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래 저 시절에는 그런 농경법이 없다 치자.나락을 저리 수확한다?그럼 다음해 농사 어찌 짓는단 말인가?불을 싸질러?그리 불싸질러서 붙을 거 같은가?천만에 붙다가 만다. 다시금 말하지만 저와 같은 반월형석도 쓰임새 재구성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2025.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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