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648 뼈단지 맞는가? 토지주택박물관 '이달의 소장품2025년 7월인화문 골호印花文骨壺(시대 : 통일신라, 크기: 높이 380 동체너비 360mm)"홈 속에 잠든 항아리 하나, 그 안엔 한 생의 끝자락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이달의 소장품은 화장 후 유골을 담아 매장한 뼈단지 '골호'입니다.삼국시대에는 매장이 주류였지만 통일신라시대 불교가 확산되며 화장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덧없고 정신은 윤회하며 죽음은 끝이 아닌 다시 태어남의 시작이라는 불교적 사상이 장례 방식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인화문 골호의 세부 문양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골호 중에서도 매우 화려하고 큰 기형에 속하며새, 꽃, 구름을 중심으로 연속 문양들을 인화기법 (일정한 문양도장으로 눌러찍어 문양을 새기는 방법)으로 조화.. 2025. 7. 7. 양반들 문집의 말을 믿지 말라 양반들 문집에 묘사된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정경과 실제 모습은 엄청난 괴리가 있다. 따라서 양반들이 쓴 글, 폼나는 글, 이걸 믿으면 역사학이고 나발이고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서 항상 의심해야 하는 것은 양반들 글이다. 양반들 글을 보면, 조선은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묘사한 조선의 모습과는 상반되게17세기부터 나라가 망하는 20세기 초엽까지 조선의 향촌은 들끓고 있었다. 한 세대가 넘어가면 노비에서 신분이 유학으로 바뀌고 이들이 19세기가 되면 궐기하여 관가를 때려부쉈다. 일본이 아니라도 서구 제국주의가 아니라도 당장 오늘 내일 하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양반들 문집의 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승정원일기도 믿지 말라. 이런 기록들 보다는 차라리 그 당시 남아 있는 호적 한 장이 더 .. 2025. 7. 7. 수확하고 먹고 싸고, 아스카박물관서 고대 일본 음식문화 기획전 오사카부大阪府 하남정河南町 동산東山 아스카 박물관飛鳥博物館에서 여름 기획전 '식과 고고학'[古代人、食べる―食と考古学] 기획전이 열리는 중이다.오사카, 나라, 효고 지역 유적 혹은 무덤에서 출토한 고고 자료 등 약 250점을 통해 야요이-나라 시대 사람들 음식 문화를 추적한다. 27일까지. 전시는, 식료를 획득하는 ▷とる ▷다양한 조리에 의한 「먹다」 ▷배설하는 「だす」」 ▷제사나 의례에서의 「ささげる」의 4장으로 구성한다. 나라현 다와라모토초田原本町 가라코·키 유적唐古・鍵遺跡 출토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 등의 동물뼈, 탄화한 쌀, 우리ウリ류 종자 등은 야요이시대 식생활을 생각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효고현 가코가와시加古川市 행자총 고분行者塚古墳과 가와이초河合町 나가레산 고분ナガレ山古墳에서는 으름덩굴アケビ.. 2025. 7. 7. 19세기의 창씨개명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한 눈에도 노비 사역이 생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과 함께가구의 크기가 줄어들고 집집마다 죄다 성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유학"을 칭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19세기 들어 양반 숫자가 급증한다는 설의 근거가 이것이다. "유학"을 칭한다고 죄다 양반이냐 하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그 전 시대에 "유학"은 아무나 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19세기에는 이렇게 독립가구의 숫자가 늘면서 "창씨개명"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낀다. 유학을 칭하자니 그럴 듯한 성이 있어야 하고 양반 성인데 개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2025. 7. 7. 파라오의 저주 곰팡이균, 암 예방 약으로 재탄생?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암 세포와 싸우는 무기로 변신 1922년 11월,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봉인된 투탕카멘 무덤 작은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그에게 뭔가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 놀라운 것들이 보입니다."라고 답했다.그러나 몇 달 후, 카터의 재정 후원자였던 카나번 경Lord Carnarvon이 의문의 병으로 사망했다.그 후 몇 년 동안 발굴팀 다른 몇몇 구성원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고, 이는 "파라오의 저주pharaoh’s curse"에 대한 전설을 낳았으며, 이 전설은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의문의 죽음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현대 과학은 더 유력한 원인을 밝혀냈다. 바.. 2025. 7. 7. 19세기에 왜 민란이 폭증하나 향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18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의 호적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있다. 아직까지도 노비 사역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집집마다 4-5명의 노비를 데리고 있던 것이 18세기 전반. 많게는 20명씩 노비를 거느린 집도 드물기만 하지만 보이는 시대다.18세기 후반이 되면 노비는 한 집에 1-2명 정도로 축소되고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딸과 노비 한두 명으로 이루어진 집이 보편화 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이 필자가 볼 때 지주 전호제가 보편화하는 시기다. 소작농이 보편화하는 시기다. 18세기 전반만 해도 노비 사역이 주류라 소작농이 보편화 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소작농이 향촌에서 보편화하는 시기는 영정조 연간이다.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다. 서양사로 본다면 노예제와 .. 2025. 7. 7. 이전 1 ··· 260 261 262 263 264 265 266 ··· 360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