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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rd WHC at Seville, Spain, 2009, where Joseon Royal Tombs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The 33rd WHC (World Heritage Committee) held at Seville, Spain, 26 June 2009, wher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were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2009년 6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올해로 조선왕릉 등재 10년.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문화재청 주최로 열리는 모양이다. 당시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내가 참가했다. 당시엔 문화재청이나 외교부에서도 이에 즈음한 별도 사진촬영이나 동영상 자료를 남기지 않을 때라 이 당시 회의장 전경과 등재 순간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나밖에 촬영하지 않았다. 지금 첨부.. 2019. 6. 10.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2011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Seoul, Nov. 11th, 2011 國立文化財硏究所 漢城 風納土城 東壁 切開調査, 2011年11月 16日 당시 이 발굴 현장에는 느닷없이 가는 바람에 사진기가 없어 폰카로 이렇게 남긴 것이 나로서는 유일하다. 그것을 보정하여 게재한다.사진 속 밀집모자 옆이 오늘날의 풍납토성을 있게 한 주인공 이형구 선문대 교수다. 발굴지점은 동벽 중에서도 이른바 태양열주택지구라 해서 풍납동 아산병원과 가까운 지점이다. 그 발굴지점을 대략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성벽 절개조사는 이것이 두번째다. 1999년 첫번째 절개조사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같.. 2019. 6. 10.
'새로운친구', 언제나 내가 먼저 입력한 전화번호 언젠가 한 말인데, 내 버릇 중에 그런대로 괜찮다는 급으로 평가할 만한 것으로 즉각적인 연락처 정리가 있다. 이런 버릇이 한창 체득화할 때는 명함을 받자마자 그 자리서 전화번호와 그 사람 직책과 이메일 정도를 입력하고는 다른 사람한테 쓰라고 명함을 돌려주곤 했으니, 이런 버릇이 그런 대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전했다. (참고로 난 명함 기재 자동 어플인지 뭔지는 안 쓴다. 초반기 쓰다가 때려쳤다.) 그러다가 요새는 나 역시 게을러져서인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연락처 정리가 더뎌지기만 해서, 심지어 한동안 쌓인 명함이 지갑에서 떼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니, 그렇게 쏟아진 명함을 일일이 정리하는 일도 보통 고역이 아닌지라, 요새는 노안까지 심해져 그 작은 명함 글씨가 잘 보일 리도 없.. 2019. 6. 9.
민음사와 갈라선 이문열,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 사상가요 역사가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민음사와 동반관계를 끝냈다고 한다. 그 소식이 오늘 우리 공장을 통해 공식화했으니, 아래 기사가 그것이다. 이문열, 민음사와 '40년 동반항해' 끝냈다송고시간 | 2019-06-09 05:33지난 4월 계약해지…삼국지 등 기존작품 판권도 새 출판사로 옮길 듯'둔주곡 1980' 바탕 둔 장편소설 연말 출간 계획…"제목도 바뀔 가능성 커" 이문열씨는 내가 학창시절을 보낼 즈음,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다. 그만큼 그가 일으킨 선풍은 컸다. 특히 이제는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의 아들》은 나한테는 우리 문학계, 소설계에도 이런 작품,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 하는 충격파가 자못 컸다. 그러다가 나는 이문열을 잊고 지냈다. 나 스스로가 문학을 멀리한 까닭도 있거니와, 그래 맞다, 먹고 살.. 2019. 6. 9.
성덕왕 거북 대가리 되어 Tomb of King Seongdeok of Silla, Gyeongju / 慶州新羅聖德王陵 경주 신라 성덕왕릉이다. 작년 오늘 오세윤 작가가 드론 촬영을 했으니 굳이 싫다는 나를 모델로 박아 찍혀줬다. 그 귀부는 머리가 날아갔으니 내가 거북 머리가 되어줬다. 이 성덕왕릉 역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런 곳 지천인 경주야말로 국보 중의 국보 아니겠는가? 수학여행 한 번 다녀오고 출장길에 한 번 들리고 돌잔치 문상 가서는 경주 보고 왔노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2019. 6. 9.
무령왕릉에 관련된 인물들 1. 윤주영...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이 30주년을 맞은 2001년, 나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무령왕릉 발굴 당시 주무 장관이셨는데, 혹 당신이 무령왕릉 발굴을 지시하셨냐 라는 등등을 물었다고 기억한다. 예상대로 그는 이 발굴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증언은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당시 그는 조선일보 무슨 고문인가로 있었다. 1928년생, 만 91세인 그는 요즘도 모임 같은 데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2. 김원룡...당시 국립박물관장이었다. 느닷없는 발굴책임자로 낙점되어 한국고고학, 아니 세계 고고학 사상 유례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하 생략 3. 안승주...무령왕릉 발굴 당시 당장 무령왕릉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창한 공주 지역 역사학계 주축 중 한 명이다. 나중인.. 201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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