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068 헌책방 예찬 필자는 과거 대학생 때도 헌책방을 기웃거리는 걸 좋아했는데 헌책방 특유의 책 냄새 그리고 헌책방 주인 아저씨와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새책방에는 이런 일이 어렵다. 책방주인 아저씨와 책 이야기 나누기도 어렵고 또 책을 싸게 사서 들고 나올 때의 그 뿌듯함도 새책방에는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헌책방을 가 보면 대한민국 출판 서적의 정화는 헌책방에 다 모여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필자가 대학생 때만 해도 사실 헌책방에는 그럴싸한 책이 드물었는데 요즘은 헌책방에 가보면 정말 대단한 책들만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원치 않은 책은 팔리지를 않으니 일찌감치 모두 폐기되어 사라지고 팔릴 만한 책들만 남아 있으니 당연히 대단한 책들만 헌책방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는 저자와 역자의 .. 2024. 9. 30. 하루에 꿩 열 마리를 해치운 김춘추 신동훈 교수께서 줄곧 동물고고학 이야기를 하고, 그 일환으로 닭과 꿩 사이에 얽힌 묘한 관계, 곧 두 날짐승 소비는 반비례한다고 강조한 바 그 핵심 요지는 꿩 소비를 많이 하는 사회에서 닭고기는 소비가 적다는 것이니, 닭소비가 한국사회 기준으로 급속도로 증가한 결정적인 시기는 근현대이며, 특히 나환자촌 독립이 결정적이었다고 나는 본다. 내 고향에도 이 집단 나환자촌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동네 기준으로 후미진 곳에 집단 강제 격리생활을 했는데, 그네가 생업을 위해 키우던 가축이 닮이었다. 이 닭은 종래 재래종과는 달라서 매일 알을 낳았고, 무엇보다 무정란이라 해서 교미 없이도 매일매일 알 하나씩을 선물했다. 재래종 닭? 계란 몇 개 얻어걸릴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도 재래종 닭을 키웠지만, 계란? 귀하.. 2024. 9. 30. 까맣고 작은 돼지, 넘치는 꿩 19세기의 조선의 돼지를 묘사한 외국인의 기행문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의 돼지는 까맣고 작은데성장이 느리고 처음 봤을 때 테리어 만한 크기에 놀랐다는 증언도 있다. 거대한 비육의 양돈만 보아온 우리로서는 불과 백년 전까지 우리 농촌 마을에 이런 돼지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불과 100년전 조선 전체에 있던 돼지의 모습이다. 꿩에 대해서는-.들에 꿩이 너무 많아 산길을 갈 때 계속 꿩을 쫒아 내며 가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왜 19세기 말까지도 한국에서 꿩이 소비가 닭 고기 소비를 압도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들판에 가면 꿩이 지천이니 닭을 힘들게 키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부북일기 등 일기를 보면 꿩사냥을 한 번 나갔다 하면 기본이 백마리씩 잡아와서 주.. 2024. 9. 30. 질리지 아니하는 박트리아 황금 질리지 아니하는 박트리아 황금이 박트리아 황금Bactrian Gold 유물은 여러 번 소개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데 시각의 심각성이 있지 않겠는가?아프간 점령 시절인 1978년 구소련 고고학도들이 틸리아 테페TillyaTepe라는 데를 발굴했으니 기원전 1세기 쿠샨Kushan 왕조 시대 왕실 묘지다.이를 박트리아 황금이라 하는데 대략 2만2천점에 달하는 황금 유물이 6개 무덤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여섯 무덤 중 다섯 곳은 여자, 한 곳은 남자가 붙인 것으로 드러났다.아프간 국립박물관에 있다는데, 저중 하나 금관이 일전에 서울에서 전시가 이뤄진 적 있다. *** related articles *** 아테나 여신을 새긴 틸리야 테페 금반지 탈레반이 녹여버린 불교 금화 2024. 9. 30. 개똥 인분 천지였던 풍납토성 이 풍광이 지금은 또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앞 사진은 아마 1999년 무렵 내가 촬영한 한 장면일 텐데 풍납토성 동벽 중앙지점이다. 보다시피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점은 묘목 밭이었다. 그 묘묙밭은 무허가였을 것이다. 당시 묘묙은 내 기억에 느티나무 종류였다. 저리 해 놓으니 성벽이 온통 개똥밭 인분밭이었다. 아산병원에 가까운 지점 성벽은 채소밭이었다. 이 역시 무허가였으니, 인근 주민들이 마음대로 파밭 깨밭으로 썼다.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 했다. 그래 일정 부분 타당하리라, 하지만 꼭 문화재 때문이었는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풍납토성이 그래도 변모를 거듭해 저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불만이다. 아예 문화재가 싫댄다. 그 문화재 때문에 없던 공원도 생기고 했는데도 싫댄다. 덮.. 2024. 9. 30.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9) 하늘을 쳐다본 산서성 고건축 기행 얼마 전 이상명이라는 사람이 명지대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인즉슨 조선 왕릉을 구성하는 건축물 중에서도 정자각에 초점을 맞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했다.그에 나 역시 관심이 지대한 까닭에 김군을 통해 문제의 논문 송부를 저자에게 부탁했다. 저자와 직접 인연이 없다 해서 그와 친한 듯이 보이는 김군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는 뜻으로 그리한 것이다. 며칠 뒤 저자 직접 사인이 붙은 학위 논문이 남영동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 증정 인사말에서 李君은 2004년 산서성 답사를 같이한 인연이 있다는 기억을 상기했다. 이군한테는 좀 미안했다. 그는 나를 기억하는데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했으니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다시 그 며칠 뒤,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사장과 연희동 .. 2024. 9. 30. 이전 1 ··· 508 509 510 511 512 513 514 ··· 334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