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778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글과 특정 계층에만 통용하는 글 앞서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 전업적 학문종사자의 글쓰기 양태로 60 이후에는 학계 동료들이 아니라, 시간을 향해 글을 쓰야 함을 역설했거니와 (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 이것이 결국 독자 readers 가 누구인가를 상정하느냐는 문제니, 이 독자 문제는 글쓰는 방식까지 구속한다. 나는 저와 같은 문제 혹은 고민을 별로 해 본이 없다. 기자로서는 말로야 지구촌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 한 명을 위해서도 쓰야 한다고 말을 했고, 실제 그런 문투 그런 내용으로 내 전직 기자생활에서 악명이 높았지만, 그에 투신할 때도 그렇고, 그것을 떠난 마당에도 나는 언제나 나름으로는 저 두 가지를 나름 조화하는 방향으로 부단히도 애를 썼다고 나를 위로해 둔다. 나는 31년을 기자생활을 했으니, 이.. 2024. 9. 13. 글은 열독율과 임팩트를 보고 언어를 선택하는 것 세계화의 시대. 논문을 비롯한 글은 모국어인 국문으로만 쓰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대학에서는 영어권 논문을 장려하여 국문 논문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도 있지만 결국 논문은 독자의 열독율과 실제로 식자층에 던지는 임팩트를 보고 써야 하므로 주제에 따라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안에 따라서는 영어로 써 봐야 아무도 안읽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야요이인의 기원문제.이런 주제는 영어로 써 봐야 읽지도 않는다. 이해 당사자가 한국인과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논문은 한국어 혹은 일본어로 쓰야 하며 그안의 세부 주제에 따라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둘 중에서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필자는 앞으로 야요이인의 기원에 관련하여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여그 결과를 글로 발표할 것인데, 거의 대부분을 일본.. 2024. 9. 13.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해외 기독교 유물 특별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개교 127주년 및 서울숭실세움 70주년을 기념하여 을 개최합니다.⠀- 전시회명 : 영감 Inspiration, 흔적 Traces, 숭실 Soongsil⠀- 전시기간 : 2024년 10월 10일(목) ~ 2024년 12월 30일(월)⠀- 전시시간 : 10:00 ~ 16:30 (매주 화요일 휴관 / 공휴일 및 주말 개관)⠀- 전시장소 : 한국기독교박물관 1층·2층 전시실⠀- 전시구성1) 고대 배경, 구약 및 신약성서의 증거, 중세 사본2) 루터, 성서, 그리고 종교개혁3) 한국 기독교와 숭실⠀- 개막행사 : 2024년 10월 10일(목) 11시 30분⠀* 문의 02-820-0751 / museum@ssu.ac.kr⠀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이상 박물관 측 안내인데 기회를 .. 2024. 9. 13.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60이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쓴다. 내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학계다. 60이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대면하며 쓴다. 주변의 선학들 의견을 들어보면 연구가 온전한 정신으로 가능한 나이의 한계는 75세다. 그 이후의 글은 후세의 평가를 생각하면 완성도의 측면에서 안 쓰는 게 더 낫다는 뜻이다. 따라서 황금같은 60세 이후 15년을 학계로 상대로 쓰면서 낭비할 수는 없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에서는 학계와 심리적으로 절연하고 시간만을 앞에 두고 대면하면서 글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시점이 되면 독자는 시간이며 내 앞에 놓인 것은 팩트 그리고 펜과 종이만 남는다. 2024. 9. 13. 글의 책임에 대하여 sns 범람시대에 그에서 비롯하는 말잔치를 보는 시각이 어느 하나로 고정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런 까닭에 순전히 개인 취향 신변잡기성 지르기를 책임없다 비난할 수는 없다. 왜? sns 탄생 배경이 그것이니깐.다만 하나 나로선 해두고 싶은 말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미칠 파장은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근자 내 경험 하나를 들자면 내가 요새 몸이 망가졌으니 이와 관련한 신변잡기성 투덜거림 혹은 징징거림식으로 비칠 만한 포스팅을 거푸 했으니 그게 나로선 별뜻이 있을 리 있겠는가? 없다. 내 일상이 이렇다 저렇다는 날림이 싫은 나로선 고향 갈 때 이야기를 제하고선 실로 오랜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다만, 그럼에도 요 몇 년간 계속 남들은 고리타분 혹은 딱딱히 여길 만한 글들만 집중한 까닭에 잠시 변화를 .. 2024. 9. 13. 아미시, 외부가 주물하고 강요한 이미지 1961년 사진작가 조지 타이스George Tice가 포착한 시골 길을 걷는 두 아미시Amish 소년이다.작가는 저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아미시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년들과 주변 고즈넉한 환경,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지 짐작은 간다.하지만 이 이미지는 나는 조작이라 본다. 저 내부 사회와는 하등 관련 없는 외부가 투영한 이미지 말이다.한국사회에서 농어산촌을 저런 시각으로 주물하려 한다. 하지만 언제나 말하듯이 저에서도 욕망이 들끓는다. 저들한테 절제는 강요된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들을 하지 못하고 있지도 아니한 것을 왜 다른 데다 강요한단 말인가? 영화속 아미시, 현실세계의 아미시 영화속 아미시, 현실세계의 아미시 2024. 9. 13. 이전 1 ··· 818 819 820 821 822 823 824 ··· 363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