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075 로마왕이 된 에트루리아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Servius Tullius 타르퀸Tarquin이 부상하자 왕비 타나퀼Tanaquil은 그가 숨을 쉬고 있을 때 재빨리 그를 궁전으로 옮겨갔다. 나중에 그녀는 궁전 창문에서 모인 군중에게 연설을 통해 타르퀸이 죽기 전에 왕이 될 다른 사람을 지명했다고 말했다. 리비우스Livy가 "왕뿐만 아니라 원로원과 백성 모두에게 최고의 존경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람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였다. 첫 행동으로, 툴리우스는 권력 쟁취에 눈이 먼 왕의 암살한 자들을 체포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역시 에트루리아인이었지만 타르퀸과는 친척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왕이 뒷배를 봐주는 젊은이 프로테게protégé로 입양되어 궁전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자 그는 신임받는 왕의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초라한 배경을 딛고서 왕의 딸과 결.. 2024. 7. 14. 결혼은 꼭 남녀끼리만? 꼭 그렇지도 아니해서 결혼은 꼭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는가? 로마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독점적이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pederasty는 유명하다. paederasty라고도 하는 이 페데라스티는 흔히 소년애라 옮기지만 암튼 드물지 않은 관행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저와 같은 동성 간 성적 관계는 흔했다. 특히 로마 문화에서는 남성이 여성과 결혼하는 동시에 공개적으로 동성 관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24. 7. 14. [스톤헨지 패러독스] (2) 주변을 비켜가는 A303 도로 그레이트 브리튼 섬 남부를 동서 방향으로 거의 직선 방향에 가깝게 관통하는 간선도로로 A303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로가 있다. 햄프셔Hampshire 지역 베이싱스토크Basingstoke와 Stonehenge를 경유하여 데븐Devon 지역 호니턴Honiton을 연결한다. 이 도로는 베이싱스토크에서 M3 도로로 갈아타서 런던으로 이어진다. 저 도로는 연원이 아주 깊어 이미 19세기에 마차로로 등장했으며, 그것이 20세기 정비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저 사진은 1930년대 그 이용 현황 하나를 보여주는 흑백 사진 한 컷이다. 오른편 언덕을 도로가 통과하는 지점 반대편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석조 기념물 하나가 보인다. 그렇다. 스톤헨지다. 그 주요 구간 지도는 다음과 같다. 앞서 말했듯이 이 도로는 런.. 2024. 7. 14.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깡패영화 공식 매일 한 번, 혹은 하루 걸러 한 번씩은 보는 덴젤 워싱턴 주연 헐리웃 깡패영화 The Equalizer 3 클라이막스로 가기 직전 한 장면이다. 덴젤이한테 동네서 공개 망신 당한 나폴리 기반 그 이름도 유명한 초거대 범죄 마피아 조직 카모라Camorra 두목이 내일밤 그 미국놈을 죽여버리겠다면서 푸줏간에 졸개 시다들 모아놓고선 전의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보통 저런 깡패영화를 보면 오야붕 두목은 항상 거사를 치르기 전날 부하들을 잘 먹인다. 한데 저 영화 저 장면은 약간 가오상하게도 고깃덩어리는 천장에 매달아놓고선 두목이 스파게티를 우거적우거적 씹어먹는다. 복수를 다짐하는 자리에 스파게티가 뭐냐? 또 하나 그 어떤 깡패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오야붕 두목 옆에는 한상 떡대 시다들이 중무장 혹은 야구방망이 .. 2024. 7. 14. [스톤헨지 패러독스] 웬 위험에 처한 유산 타령? 바로 앞 사진은 구글어스로 내려다 본 스톤헨지Stonehenge다. 워낙 유명한 유적이라, 저곳이 어떤 데인지는 건너뛴다. 저곳은 1986년 유네스코 제10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기준 i, ii, iii 세 가지를 충족한다 해서 '스톤헨지, 에이브버리, 그리고 관련 유적[Stonehenge, Avebury and Associated Sites]' 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우린 저 무렵 세계유산을 뒷집 똥개 이름으로 알 때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저 위대한 유산 스톤헨지Stonehenge가 느닷없는 위험에 처한 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 논란에 휩싸였다. 들려오는 소식들을 종합하면, 오는 21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하는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 2024. 7. 14. 조선시대 신권臣權이라는 용어는 타당한가 조선시대의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용어로 왕권과 신권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신권이라는 것이 좀 모호한데, 신권이 신하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하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대개 인권이라고 하면 시민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신권이라고 하면 후자, 신하의 권리를 떠올리기 쉬운데 신권이라는 용어를 쓰는 측에서는 신하의 권력을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신하의 권리를 의미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간단히 말하면 신하의 권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왕조 체제에서는 출현하기 어렵다. 신하가 왕에게 적극적으로 간하고 정치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절대권력인 왕권을 보필하기 위한 명분이지 신하의 권리라고 주장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시 사람들은 신.. 2024. 7. 14. 이전 1 ··· 819 820 821 822 823 824 825 ··· 351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