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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를 따는 사람들 ​올리브 오일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 지중해 동부 사람들이 야생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시작한다.​기원전 5000년  무렵이 되면서 그 야생은 과수원에서 재배했다.올리브 오일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를 불러왔다. ​램프를 밝히는 연료로 소비되었고, 음식을 더 오래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요구르트와 치즈와 같은 유제품을 보존했고, 광범위한 요리가 번성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지중해 식단'으로 알고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저 암포라는 그리스의 올리브 수확을 묘사한다. 한 사람은 나무에 올라가서 열매를 따고 있고, 그 아래서는 수염이 난 두 사람이 막대기로 나무를 때려 열매를 따며, 다른 한 사람은 땅에 떨어진 열.. 2024. 7. 8.
불가리아 주요 고고학 사이트 Archaeological sites in Bulgaria This category has the following 7 subcategories, out of 7 total.[대분류] A Ancient Greek archaeological sites in Bulgaria‎ (5 P) Ancient Roman buildings and structures in Bulgaria‎ (4 C, 9 P)P Prehistoric sites in Bulgaria‎ (13 P)R Roman sites in Bulgaria‎ (5 C, 16 P)T Thracian archaeological sites in Bulgaria‎ (16 P) Tombs in Bulgaria‎ (12 P) Treasure troves in Bulgaria‎ (12 P)Pages in category "A.. 2024. 7. 8.
돈 때문에 상여짓 공동재산 관리로 간 조선사회 상여는 본래 한 번 쓰고는 태우거나 묻어버려야 한다. 이에 배반하는 전통이 우리네 상여집이다. 내 고향에서도 이 상여집이라는 것이 어릴 때까지 있다가 사라졌다. 이 상여는 마을 공동재산이었다. 그 상여집은 보통 동네 무미진 계곡 골짜기에다가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귀신 나오는 데라 해서 가는 일이 드물었다. 동네 초상이 날 때마다 이 상여집에서 상여를 꺼내어 시신을 무덤에 매장하는 데까지 옮기고는 도로 거두어 상여집에 넣었다. 조선시대가 왜 이 시스템으로 갔는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죽을 때마다 상여를 새로 만들어 태우다 보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나아가 무덤 구조도 상여 공동재사용 재산 관리에 한 몫을 했다. 조선 무덤은 왕릉까지도 그런 상여를 시신과 함께 넣어 매장할 공간이 없었다. 무덤 .. 2024. 7. 8.
무덤에서 발견되는 탈것은 덮어놓고 상여로 봐야 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모든 무덤 속 탈것이 상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탈것은 위선은 상여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시간 공간을 뛰어넘어 이 관점에서 위선은 바라 봐야 한다.나는 바로 앞선 글에서 에트루리아 무덤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마차들이 상여일 가능성을 짚었거니와 그렇다 해서 꼭 그렇다는 보장도 없지만 최우선으로 무조건 무덤에서 나오는 그 어떤 탈 것도 상여로 봐야 한다. 보고 나서 다른 관점에서도 살펴야 한다. 유목 전통이 상당히 강한 흉노 같은 무덤을 보면 마차가 자주 보이는데 볼 거 없다. 그 묘주 시신을 옮긴 상여다. 기자 피라미드 중 대빵이라는 쿠푸대왕 피라미드 인근에서 발견된 선박.볼 거 없다. 파라오 죽어 왕궁에서 피라미드까지 그 시체 옮긴 상여다.  이 상여라는 관점에서 보면.. 2024. 7. 8.
상여로 썼을지도 모르는 에트루리아 전차 언뜻 우리네 병향로를 연상케 하는 이거야 발통이 달렸으니 당연히 마차다. 보존상태가 놀라우리만치 좋은 저 전차는 몬텔레오네 전차Monteleone chariot 라 일컫는 기원전 6세기 에트루리아 유물로 현재 미국 Met 소장품이다. 제작 시점을 더 구체로는 기원전 6세기 제2 사반세기라 하는데 그렇다면 대략 서기 520년 무렵이라는 뜻인가? 저걸 소장한 메트에서는 로마 시대 이전 이탈리아에서 출토된 전차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자랑하는데 저 정도라면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저 상태는 여러 연구를 반영해 손을 많이 댄 것이다. 제아무리 출토품이라 해도 저 정도로 완벽하게 출현할 수는 없다. 보통은 와장창 주저앉은 상태로 발견되며, 그걸 일일이 다 끼워 맞추어야 한다. 박물관 설명에 의하면 이 .. 2024. 7. 8.
투탕카멘 마스크는 본래는 마누라 네페르티티한테 쌔빈 것? 투트Tut 왕 무덤에서 발견된 5천 점의 유물 중 3천 3백 년 된 이 가면은 가장 유명한 고대 유물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 가면은 실제로 투트 왕 자신의 것이었을까?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r는 이집트 룩소르Luxor 왕들의 계곡 Valley of the Kings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했다. 카터의 끈기는 무덤이 모두 발견됐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3천300년 된 유명한 장례 가면을 비롯해 5천여 점의 유물이 가득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게 했다. 비교적 존재감 없는 파라오인 투탕카멘 왕은 이 놀라운 발견으로 사후에 유명해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를 위한 물건들과 함께 죽은 사람들을 묻었고, 투탕카멘 무덤은 수천 년 동안 손대지 않은 그러한 물건.. 20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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