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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027

30대는 셀카 놀이가 아니라 콘텐츠 놀이를 해야 한다 이른바 전문직종, 혹은 그 엇비슷한 부류에 몸담은 사람으로 페이스북이 얼굴 앨범이라는 이름에 충실한답시며 시도때도 없이 셀카놀이에 열중하는 사람 있다. 이딴 사람 토 나온다. 30대, 혹은 40대 전문직종은 콘텐츠라는 바다를 헤엄쳐야 한다. 30대면 이미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토대 완성을 본 연령대라, 이제는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내야 한다. 완제품? 완제품이 어디 있는가? 죽을 때까지 콘텐츠에 무슨 완제품이 있단 말인가? 죽을 때까지 콘텐츠는 만들어갈 뿐이다. 죽을 때가 완제품? 그 딴 거 없다. 미완성일 뿐이다. 그 꿈을 향해 맹렬히 달려갈 뿐이다. 그 미완성 제품이 모여 단행본이 되고, 또 내가 미쳐 부족한 부문들은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서른줄이 넘어선 셀카 놀이는 역겹.. 2023. 12. 17.
국민·시민·공동체, 공공성을 완성하는 삼두마차 최근 고고학계 일각에서 고고학의 공공성 공익성을 들고 나왔거니와 나는 일단 그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대목이 빠졌음을 비판했으니 이참에 공공성 공익성을 구성하는 절대요건, 삼두마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공성 공익성은 말할 것도 없이 사私를 염두에 둔 것이라 무엇이 공公인가? 나를 떠난 우리를 말한다. 길게 얘기할 필요없다. 고고학이 말하는 공이란 고고학 밖을 겨냥한 것이니 그 고고학 밖을 향해 우리라고 부르짖는 일이다. 그 실현을 위해 나는 무엇보다 고고학을 한다는 주체의 혁명, 탈구축이 있어야 한다 했으니 그래 솔까 지들이 저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에둘릴 필요없이 국민 시민 공동체와 함께하지 않고서 무슨 공공성 공익성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저 공공성 공익성 선.. 2023. 12. 17.
임금이 번번이 내리는 부의품, 대체 어디 갔는가를 물어야 한다 삼국사기 이래 각종 실록을 보면 저명한 사람이 죽으면 임금은 모름지기 사흘간 조정 업무를 정지함으로써 애도기간을 설정하고 또 모름지기 부의품을 내린다. 이 애도기간은 임시공휴일이지만 공경대부는 출근하지 말고 탱자탱자 놀라는 뜻이 아니라 모름지기 이 기간 죽은 사람 빈소를 찾아가 상주를 만나 위로하고 또 두툼한 봉투를 내어놓으라는 의미인데, 솔까 그래서 그때는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좋아라 했으니 하루 잠깐 고개 들이밀고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상주 손잡아 주고는 아버지는 훌륭했네 블라블라하고는 나머지는 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주 찾는 일을 문상問喪이라 하며, 이때 빈손으로 가면 맞아죽는데 모름지기 성의 표시는 물목物目으로 하는데 이 물목이 바로 부의賻儀다. 왜 부의하는가? 그것이 예의인 까닭이다. 나아가 .. 2023. 12. 16.
배신, 철옹성을 균열하는 작지만 거대한 힘 산성을 다니다보면 일당 백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이런 성을 근거로 삼이 공격은 하지 않고 지키기만 하면서 적이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라는 전술이 농성籠城이다. 농성이건 뭐건 특히 우리네 산성의 경우 이른바 철옹성이라 도저히 무너질 수가 없다. 진짜로 일당백이라서 농성하는 적 한 명은 백 명이 감당해도 뿌리뽑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산성 중에서도 남한산성은 너무 크고 산세가 험한 편도 아니어서 비교적 공략이 쉬운 데다. 함에도 그 압도적 무기에 압도적 전술에 압도적 군사력을 구비한 청나라 막강 철기군도 끝내 군사 함락에는 실패했다. 군량미만 넉넉하면 산성은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다. 함에도 왜 툭하면 저런 산성이 무너졌는가? 종국엔 함락이라지만, 또 그리 끝내 종말하고는 말지만 결국은 배신이다. 전부.. 2023. 12. 16.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아는 게 없음 꿔다논 보릿자루일 뿐 문화계만, 전시업계만 국한해도 촣은 전시가 오죽 많은가? 더구나 연말연초라 천지사방 전시라 해서 어서 오라 다투어 호객행위 일삼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토록 오만방자한 말은 없다. 이런 전시는 갈 필요가 없다. 왜인가? 배우러 가는 데가 전시장은 아닌 까닭이다. 전시장이 숙제하러 가는 데란 말인가? 이런 전시는 필연으로 실패한다. 그래서 유홍준은 틀렸다. 네 똥 굵을 뿐이다. 전시는 호흡하는 데이며 공유하는 데고 내가 그 자리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빛나고 전시가 빛나는 자리다. 즐기는 자리다. 콘서트장을 내가 즐기러 가지 배우러 간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그 어느 누구도 배우러 전시장을 가지 않는다. 이 괴리에서 박물관 미술관이 탑재한 비극이 있다. 그렇다고 저 말이 아주 틀린가 하면 모름지기 그런 것.. 2023. 12. 16.
박물관 미술관은 미다시 디자인 전쟁터, 만년사물의 경우 요새 전시포스터 보면 기가 찬다. 종래 한두 가지 만들어 뿌렸다면 요새는 몇 종을 제작하는 모를 정도로 많다. 것도 하나 하나 현란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거 보면 박물관 미술관이 사는 길은 종래 이를 점령하고 주인행세하는 고고학 미술사 건축학 보존과학이 물러나야 하며 무엇보다 시대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땅들은 뒤칸에 앉아 굿이나 보고 떡고물이나 줏어 먹든 아님 결재 올라오는 대로 그냥 사인만 해야 한다. 저 하나하나 기똥차지 아니한가? 저것들이 어찌 종래 돌대가리들한테서 나오는 디자인이겠는가? 진짜로 늙으면 죽거나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 까딱하면 낙오? 이미 내 세대는 낙오자다. 서울공예박물관 만년사물 홍보물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202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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