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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쑤신 국가유산법] (2) 중앙과 지방의 괴리 국가유산기본법은 무엇보다 기존에 문화재로 통용하던 말을 '국가유산'으로 일괄 교체할 것을 주문하고 강요하고 윽박하며 법제화했다. 이 문제가 초래할 심각성은 실은 법령 제정 단계에서 많은 지적이 있었거니와, 이를 문화재청은 지금은 국가보훈부로 이름을 바꾼 국가보훈처로 돌파하고자 했다. 국가라는 말이 주는 군국주의 냄새를 국가보훈처도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는 요지였다. 또 마침 중국에 보니 국가문물국이 있다. 하지만 누차 이야기하지만 문화재라는 용어가 유산 heritagea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이번 법령 체제 개편의 가장 큰 이유인 자연유산의 포괄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이지만, 지들이 중앙정부 기관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공포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중앙정부 주도 냄새와 군국주의 냄새가.. 2024. 3. 12.
[벌집 쑤신 국가유산법] (1) 요망한 분류 체계 문화재 행정은 언젠가는 손을 대어야 했고, 그런 점에서 그 근간을 이루는 문화재보호법을 어떤 형식으로건 그 근간을 재편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재청이 주도한 최근 일련의 흐름은 분명히 일정 부문 평가받아야 한다. 왜? 이런 시도를 1961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서 간과한 중대한 측면이 있으니, 기존에 통용하는 문화재라는 개념을 국가유산으로 대체했다는 데 있으니, 문화재가 유산 heritage 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을지언정 작금 저 국가유산법은 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기존에 통용하는 문화재라는 말을 국가유산으로 일괄 교체하게 함으로써 벌집을 쑤셔놓은 꼴이라. 이것이 왜 문제인가? 문화재를 저리 용어를 교체하고자 한 의도는 무엇보다 그것이 자연유산을 포괄할 .. 2024. 3. 12.
'스핑쓰'를 보며 심산 노수현을 생각하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 화백이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수제자였던 그는 한국화 근대 6대가로 꼽힐 만큼 대단한 산수화 실력을 자랑했고 거기 덧붙여 뛰어난 사회풍자만화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생계수단으로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그렸는데,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 4컷만화 도 그의 솜씨다. 상당히 긴 기간 연재했고 그만큼 소재도 다양해서, 최근에는 이를 소재로 일제강점기 생활문화사를 연구하는 논저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물론, 이 때문에 뒷날 에 오르게 되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순종황제가 승하하여 조선 전역이 비통해하던 1926년 4월 28일자 에 노수현의 만화가 실린다. 의 주인공들.. 2024. 3. 12.
정지상과 김부식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씨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에 실린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1135)과 뇌천雷川 김부식金富軾(1075~1151)의 글씨. 정지상의 것은 7언절구(거나 율시거나) 마지막 구절과 이름만 남았고, 김부식의 것은 그래도 두 구절은 남았다. 봄바람 부는 자줏빛 밭두렁에 가랑비 지나가더라 紫陌春風細雨過 지상 知常 버들이 어둑하니 뉘 집이 술집인고 柳暗誰家沽酒店 달 밝은 어드메에 낚싯배가 있는가 月明何處釣魚舟 김부식 金富軾 옛말에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데, 둘 다 행초서라 비슷하긴 해도 은근히 느낌이 다르기는 하다. 필적학 연구하시는 분들은 아마 여기서 둘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도 있겠다. 목판이 아니라 진짜 글씨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2024. 3. 12.
전주 부잣집 아들 유당 김희순의 취미 그 이상, 서화 자고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예술의 세계에도 이 속담은 한치 어긋남 없이 들어맞는다. 부유한 이들은 예술가를 후원하며 그들의 작품을 즐겼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 예술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아래 난초 그림을 그린 유당酉堂 김희순金熙舜(1886-1968)도 그런 경우이다. 그는 전주 부잣집 아들이었다. 가학으로 한학을 익혔고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1854-1903)에게 서화를 배운 그는 시서화삼절이라고까지 할 만큼 그림 솜씨가 좋았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사군자를 출품해 한 번은 4등을 하고 7차례나 입선하는 기록을 세운다. 해방 후에도 김희순은 서화 연찬을 게을리하지 않아, 국전 입선, 추천작가로 활동했다. 또 김희순은 지역 예술 발전에도 공이 컸다. 1935년 효산曉山 이광렬.. 2024. 3. 11.
서하西夏 왕위계승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태조太祖 신무황제神武皇帝 이계천李繼遷 - - 유릉裕陵 - 태종太宗 광성황제光聖皇帝 이덕명李德明 - - 가릉嘉陵 - 경종景宗 무열황제武烈皇帝 이원호李元昊 현도顯道 1032 ~ 1034 개운開運 1034 광운廣運 1034~1036 대경大慶 1036~1038 1032~1038 태릉泰陵 제1대 경종景宗 무열황제武烈皇帝 이원호李元昊 천수예법연조天授禮法延祚 1038~1048 1038~1048 태릉泰陵 제2대 의종毅宗 소영황제昭英皇帝 이양조李諒祚 연사녕국延嗣寧國 1049 천우수성天祐垂聖 1050~1052 복성승도福聖承道 1053~1056 차도奲都 1057~1062 공화拱化 1063~1067 1048~1067 안릉安陵 제3대 혜종惠宗 강정황제康靖皇帝 이병상李秉常 건도乾道 1.. 202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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