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47

낙양 북망산에서 출현한 위진魏晋시대 고위 관료 가족 공동묘지 https://haokan.baidu.com/v?pd=wisenatural&vid=8905354517960629528 낙양洛阳 맹진구孟津区 송장촌送庄村 동남쪽 지구에서 3개 묘장墓葬을 남북 방향으로 안치하고서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차례로 만든 위진시대 가족 공동묘지가 발굴됐다고 낙양시고고연구원洛阳市考古研究院이 최근 발표했다. 이들 무덤은 모두 시신을 묻는 공간인 묘실墓室은 북쪽에 두고 그 반대편 남쪽에다가 묘실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인 묘도墓道를 설치했다. 이번 발굴 책임자인 연구원 부연구원副研究员 유빈刘斌에 의하면 낙양에서 발견된 위진시대 묘장은 매우 드문 상황에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가족 공동묘지가 처음으로 낙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조사단은 이들 무덤에 대해 각각 M1、M2、M3라는 구별 명칭을 .. 2024. 2. 4.
나말여초 문단 거물 최언위와 그의 네 아들(1) 나말여초 문단을 호령한 인물로 최치원崔致遠(857~?), 그리고 견훤을 섬긴 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같은 경주최씨로 그보다는 열한 살 어린 최언위崔彦撝(868~944)다. 치원과 언위 둘은 당나라 유학파로 그에서 급제한 인생 행로가 아주 비슷한데, 또 세트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다만, 최치원은 나말에 해인사로 은거한 뒤에는 행적이 묘연한 데 견주어, 최언위는 달라서 오래산 까닭도 있지마는 고려가 건국한 다음에는 아예 주거지를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기고, 고려 조정에서 문한을 담당한다.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초명初名이 신지愼之라 했으니, 이는 삼가고 삼갈지니라 하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라, 다만 그 바꾼 이름 언위彦撝는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내가 아직 추적하.. 2024. 2. 4.
Best of best, 수선전도首善全圖의 수선首善 조선시대 도성都城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성곽으로 두른 도읍을 의미했으니, 구체로는 현재 우리가 한양도성이라 일컫는 나성羅城이 둘러친 공간 구역 안쪽을 말한다. 이곳이 서울이라 지금의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가 본래는 엄격한 의미의 도성이며, 이곳이 바로 서울이다. 이 도성은 조선 왕조 건국 직후에 이미 둘러치기 시작해 후대에 끊임없는 보수가 있었지만, 그 공간 구역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 오백년 내내 저 구역은 그대로였다. 물론 도시 구역이 성밖으로 계속 확장해가기는 했지만, 한양도성은 죽죽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제작한 도성지도란 곧 저 한양도성 안쪽 지도를 말한다. 실제 그런가는 차치하고 생긴 모양은 천상 자궁 딱 그것이다. 조선시대, 특히 그 후기 도성을 .. 2024. 2. 4.
시루는 똥구멍 숫자도 중요하다 시루 똥꾸멍 숫자 변화로도 사상 변화를 감지한다. 어느 시대까지는 똥꾸멍 숫자에 법칙성이 없어 지 맘대로 뚫는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 이후엔 정합성이 있다. 음양오행설은 시루 똥꾸멍에서 탄생했다. (2016. 2. 3) *** 시루 똥구멍 숫자에 어느 시기부터 정합성이 생기는 거 아는가?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고학도들은 앞으로 살펴 보기 바란다. 어느 시기에 시루 똥구멍에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시루는 똥구멍이 중요하니 박물관 종사자들은 유념해서 전시해 주었으면 한다. 서울대박물관만 해도 십년 전엔 저리 전시했다가 권오씨 집권기에 와서 똥구멍을 감춰 버렸다. 권오가 닭대가리 계수호에 정신이 팔려 k컬처 선두주자인 시루를 등한히 한 까닭이다. 2024. 2. 4.
사무라이 블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70년 당시 호적조사에 의하면 일본 전체 인구의 3.6% 정도가 사족, 다시 말해 좀 폼잡을 수 있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2.7% 정도가 졸족卒族, 다시 말해 아시가루 같은 최하급 무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가루까지 포함해서도 전 인구의 6프로 조금 넘는 정도만이 사족이나 졸족이 되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농민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일본에 가서 만나는 사람 100명 중 94명은 농민의 후손이고, 그 중 6명이 사족, 그리고 그 여섯 명 중에 또 절반인 3명은 아시가루이니 엄밀히 이야기 하면 사족이라 부르기도 뭣한 계급이었던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무라이 정신 어쩌고하는 것은 그러니까 웃기는 이야기인 것이다. 일본도 "농민정신"이 맞다. 그러니 일본 축구대표팀을 "사무라.. 2024. 2. 4.
바닥부터 재상으로 수직 상승한 왕자지王字之 이름 듣고는 대뜸 대물열전 등판 인물 아닌가 하겠지만, 또 그 후속타를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고려 중기 때 인물이다. 그는 이미 궁예 정권 시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해서 출사해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까지 이르렀지만 궁예가 포악하게 변하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가 훗날 세상이 격변하고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자 다시 나와 국가 기밀을 관장하게 된 박유朴儒라는 사람 현손이다. 박씨 집안 직계 후손임에도 왕씨 성을 쓴 까닭은 이미 저 박유가 하도 고려 왕조가 자리 잡는 데 공이 크다 해서 그 할아버지 박유한테 아예 왕실 성인 왕씨를 하사해 왕유王儒로 창씨개명한 데 따른다. 고려사 왕유 열전에 부기된 왕자지王字之 열전에 의하면 그는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어릴 적 이름은 소중紹.. 2024. 2.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