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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릉은 다른 데다 경주분지 기준 서쪽을 정좌定座하는 까닭에 그 이름을 선도산仙桃山이라 하니, 이는 동아시아 고대가 상상한 서쪽의 산이 곤륜산이며 그 곤륜산엔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성 신이 주석하고 그에는 먹으면 장수 혹은 영원불멸을 보장한다는 선도仙桃 복숭아 산지인 까닭이다. 이미 신라 당시에 저와 같은 이름을 얻은 선도산은 그런 까닭에 서악西岳이라고도 하고 서형산西兄山과 같은 이칭이 있었으니 서왕모에 비견하는 여성으로 사소라고 하는 박혁거세 엄마가 신이 되어 주석하는 데라 생각했다. 왜 김유신 누이 보희가 하필 저 서형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계림이 물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겠는가? 서형산은 신라 건국을 모태하는 자궁子宮이라 그 자궁은 일세의 영걸을 생산하니 저 꿈에서 비롯한 삼한의 영걸이 바로 김법민이라 그가 훗날 죽어 문무.. 2022. 9. 19.
신라 가옥은 7세기까지 굴립주 건물이었다 이는 근자 간행된 신라사학회 기관지 《신라사학보》 37집에 기고한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실장의 논문 '7세기대 신라 가옥구조에 관한 고찰' 성과 결론이다. 이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 말마따나 이에 대한 심각한 고고학적 고민이 없거나 태부족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문은 의의가 있다. 두번째로 굴립주堀立住 건물이었다는 결론이 미칠 파장이다. 굴립주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별도 기초 시설이나 초석 없이 그대로 나무 기둥을 박아서 만든 집을 말한다. 이런 굴립주 건물은 그 기초가 남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나 경주 분지처럼 잦은 홍수로 가옥 지대가 침수되고, 나아가 그에 따른 재건축이 빈발한 지형에서 굴립주 건물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굴립주 건물은 저런 지형에서는 기초를 남기.. 2022. 9. 19.
말벌과 두더지, 천년왕국 신라를 붕괴하다 간단없는 보수에 기인하겠지만 그 큰 덩치 무덤들이 물경 천오백년을 버팅긴 힘은 요행 이었다. 딴거 없다. 신라인들이라고 무에 더 쌓는 기술이 탁월하다 해서 간단없는 성상을 견뎠겠는가? 저를 보며 지금의 우리는 찬탄하나 그건 남은 몇 개를 상념하는 착시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것 몇 곱절 아니 몇배 몇십배 몇백배가 이런저런 이유로 망각 멸실 훼손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언커니와 저것들이 버티는 힘은 오직 요행이 있을 뿐이니 근자엔 그런 요행이 법과 행정이 결합해 돈을 쳐발라 무너지면 더 튼실히 쌓아올리는 시대다. 무덤을 만드는 기술이 더 특출났기 때문도 아니요 순전히 요행이라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태풍 힌남누인지 한남노인지 한남로가 덮친 이번 수해에 법흥왕 진흥왕 무렵 신라 왕가의 종족묘지인.. 2022. 9. 18.
초록초록하였던 9월 진평왕릉 2022.9.17(토) 국제문화재산업전으로 나흘동안 화백컨벤션센터에만 갖혀있는게 안쓰러우셨는지 김태식단장님께서 잠시 드라이브를 시켜 주셨다. 점심먹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진평왕릉. 경주에서는 웨딩촬영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알겠다. 초록초록한 나무들 사이로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환한 미소로 서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뭐 예쁘게만 나온다면 배경이 무덤이면 어떠하리! ㅎㅎㅎ 진평왕릉 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진평왕릉 : 네이버 방문자리뷰 21 · 블로그리뷰 235 m.place.naver.com 2022. 9. 17.
Archaeopress와 출판 계약 1년 넘게 써오던 인도 라키가리 유적 보고서를 마침내 Archaeopress사와 계약하였다. 인도의 학자 두분과 제가 Editor가 되고 우리나라 김용준 박사가 Associate Editor로 참여하고 있다. Archaeopress사와 계약서에는 내가 대표 편집자로 서명하였다. 계약서를 보니 눈에 띄는건 별다른건 없고, 이번 계약에서도 편집자에게는 기증본 2부, 그리고 전자출판카피만 제공된다는 점. 그리고 추가로 더 필요하면 35프로 할인해주겠다는 내용이 보인다. 지난번 Springer에서 책을 냈을때는 3부 + 전자책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적다. 이번에 받은 2부도 학교 도서관과 국립박물관 도서실에 기증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볼 책이 없네 그러면... 2022. 9. 17.
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김부귀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은 '그로'(그로테스크)에 빠져있었다. 무언가 기괴한 일 없나, 궁금해하고 찾아다니던 그들의 앞에 '그로'의 실체가 나타났다.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키가 컸다는 거인, 김부귀金富貴(1905-1943)가 그였다. 경남 거창 사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출가해 승려생활을 하다 속세로 나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낮도깨비야 낮도깨비!" "원 그런 사람이 있을랴구"라고 수군거렸으며, 신발이 배만하다는 둥 손이 솥뚜껑만하다는 둥 온갖 말을 덧붙였다. 남아있는 사진만 봐도 과연 거인巨人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신문이며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도 제법 확인되는데, 그 큰 체구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서 중국, 일본을 거쳐 미국 하와이까지 갔다왔다니 환속還俗한 보람은 있었다고 할까. 거기서 더 나아..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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