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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yangsa Temple 무량사 無量寺 무량사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map.kakao.com Located at the foot of Mansusan Mountain, Muryangsa Temple was establishe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c. 676-935). The temple grew rapidly in the following Goryeo period (918-1392) to consist of major dharma halls such as Daeungjeon, Geungnakjeon, Cheonbuljeon, Eungjinjeon, and Myeongbujeon, about thirty dormitories, and twelve affiliated hermitages. Th.. 2020. 8. 31.
문서 판독은 자획字劃보단 문리文理로 금석문 등 한자를 판독할 때 자획字劃만 보려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필사본 문서들을 보면 자획으로 판독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승정원일기를 예로 들면 熙는 熈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고, 經은 자획으로 보면 徑으로 쓰였고, 器는 哭으로 쓰인다. 己, 已, 巳는 구분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자 판독의 기본 전제는 자획이 아니라 문리다. 문리로 읽어야지 자획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2020. 8. 31.
사람잡은 멧돼지 근자 김천 조마에서 일흔세살 노인이 감전사했다 한다. 멧돼지가 극성이라 고구마밭 등지에 고압선을 쳐서 멧돼지를 막는 모양인 바 그에 걸려 감전사했다 한다. 유가족에선 보상금으로 일억을 요구했다 한다. 듣자니 우리 동네서도 곳곳에 고압선을 설치했다면서 한번 김천에 오면 곤충잡는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형은이가 걱정이라고 마미가 말씀하신다. 자연 혹은 환경과 인간의 조화. 탁상에선 동물보호 운운하는 모양이나 현실은 극명히 딴 세상이다. (2014. 8. 31) *** 멧돼지를 보호한다 해서 멧돼지가 그에 고맙다 해서 아주 조금만 쳐먹고 가지는 않는다. 아주 밭 하나를 작살낸다. 멧돼지 뿐이랴? 족제비가 보기엔 이쁘다 해서 그걸 닭장에 넣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고맙다 해서 닭을 안 잡아먹거나 한 마리만.. 2020. 8. 31.
학예연구사와 큐레이터 ‘학예연구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아마 ‘박물관’ 또는 ‘미술관’일 거다. 근데 지자체 학예연구사가 직업인 나는 박물관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내가 주로 하는 업무는 문화재 발굴, 지정, 활용 등이다.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큐레이터’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지자체 학예연구사는 그냥 학예연구사다.(직급은 학예연구사이지만 조직 내 직위에 따라 ‘주무관’, ‘실무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냥 ‘주사님’이다...) ※ 연구직 공무원은 1981년 이전에는 연구관, 연구사, 연구사보, 연구원, 연구원보 등으로 구분하였다가, 1981년 「연구직공무원의 계급구분과 임용 등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10644호)」에 근거하여 연구관, 연구사의 2계급 체제로 직급이 통일되.. 2020. 8. 31.
안견을 배우고 포도를 잘 그렸다는 신사임당 "어무이는 평소 그림솜씨가 아주 비상하셨으니 일곱살 때부터 안견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마침내 산수화를 그리시니 극히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그림을 베껴 그린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 율곡이 쓴 선비행장..다시말해 돌아가신 어머니 곧 신사임당 행적을 정리한 글 마지막 대목이다. 신사임당으로 통용하는 율곡 엄마 신씨는 첫째 그가 그림 공부 교보재로 삼은 안견 그림은 진품인가 모본인가? 둘째 생평 강릉과 서울을 오간 그가 포도를 직접 봤을까? 누가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 바라노라. (2014. 8. 31) 2020. 8. 31.
백년이 착종하는 인간 서울로 유학한 이래 내가 죽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가 넌 어째 우리 아버지랑 같은 세대를 산 것 같단 말이었다. 선친은 1921년생이시니 태평양전쟁 때 탄광노무자로 끌려가셨다. 선친은 작은아버지께 양자로 가셨는데 나에겐 생물학적으로는 작은할아버지인 할아버지인 1896년 생이니 갑오개혁 동학농민운동 무렵에 태어났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 내가 도시에서 자란 동년배들에 견주어 한 세대 이른 삶을 살았다고 했지만 요새 보니 내 삶은 백년전 광무황제 시절을 산 것 같다. 백년 간극을 두고 19세기말과 21세기가 착종하는 사람이 나인 듯 하다. 죽창 들고 혁명해봐? 나같은 놈들한테 192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실은 이해가 쉬운데 왜 그런고 하면 그 무대가 바로 내 어린시절의 삶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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