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981

주인은 산에 가고 개새끼만 날 반기네 국화담 주인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尋菊花潭主人不遇] [唐] 맹호연孟浩然(689∼740) 발걸음 국화담에 이를 즈음 마을 서쪽으로 해 이미 기울었네 주인은 중양절 맞으러 산에 가고 닭이랑 개만 부질없이 집 지키네 行至菊花潭, 村西日已斜. 主人登高去, 雞犬空在家 2018. 10. 27.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李孝石, 1907~1942)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煙突)의 붉은 빛난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 2018. 10. 27.
거울속 중늙은이 거울을 봤다. 영락없는 중늙은이다. 백발은 성성하고 표정은 우거지상이다. 웃는 적이나 있었던가? 뭘 그래? 가끔은 웃기도 해. 그래? 허탈해서 나오는 표정 아닌가? 요새 젊은 애들은 그걸 썩소라 하더라만? 태백太白 이택李白(701~762)이 아마도 50대였겠지? 한때나마 황제와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몸사르겠다고 했다가, 그런 기회를 용케 잡기는 했지만, 막상 하는 일이라곤 황제를 위한 개그맨이라, 이 짓 못 해먹겠다고 때려 치고 나왔더랬지? 그렇게 실업자 백수로 전전한지 10여 년, 어쩌다 강남 추포秋浦라는 곳으로 흘러간 모양인데, 그참 이름 요상타. 춘포春浦도 아니요 가을이라니? 실의한 사람한테 그 어떤 가을도 조락일 뿐. 마침내 이 중늙은이 울분을 시로써 쏟아내니 이름하기를 추포가秋浦歌라 했.. 2018. 10. 27.
도선비로 둔갑한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 진흥왕 순수비 중에서도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자리한 소위 북한산 순수비가 존재를 드러내기는 오래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위치한 곳이 북한산 봉우리 중 하나요, 그곳이 사방을 조망하는 위치 때문에 언제나 외부에 노출되었거니와, 온통 거대한 바위인 이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하니 선 표지성表識性에서 비롯한다. 이 비석이 차지하는 막강 위치는 북한산을 구성하는 무수한 봉우리 중에서도 오직 이곳만을 비봉碑峰이라 일컫게 하거니와, 비봉이란 빗돌이 선 봉우리라는 뜻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 비석 실체가 진흥왕이 세운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는 익히 알려졌듯이 19세기 들어와 김정희를 기다리고 나서였다. 그가 현지를 답사하고, 남긴 증언을 볼 적에 그때까지만 해도 글씨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으며, 비석은 온통 이끼.. 2018. 10. 27.
"나도 참 많이 고생한 거 같아", 어느 고고학도의 일생 어제(October 26, 2017) 하루는 휴가였다. 그런 휴가에 느닷없이 익산 왕궁리로 내가 향한 까닭은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때문이었다. 현장 자문회의가 있다 했고, 그 자문위원으로 가신다 해서 서둘러 내려갔다. 1947년(실제는 1946년 1월) 경북 영주 출생. 아버지는 육군 장교 출신으로 5.16 때 군을 떠났다. 외지 생활을 하는 아버지와는 떨어져 고향 영주 안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다가 안정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에 있는 부모와 같이 살고자 중앙선 야간 열차를 타고는 홀로 상경해 청량리역에 내렸다. 처음엔 영등포 신도림에 살다가 중동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문래동 적산가옥 생활을 시작한다. 지금의 주공아파트마냥 그때 문래동엔 상자로 찍어낸 듯한 적산가옥 500채.. 2018. 10. 27.
마지막 잎새 가을 탓 많은 거 안다. 그런가 하면 가을이 무슨 죄냐는 반문도 만만치는 않다. 저야 때가 되어 돌아왔을 뿐이요 내년 이맘쯤이면 또 어김없이 올 터인데, 그런 가을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애수 상념 고통을 가을 탓으로 돌리느냐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을이면 왠지 센티멘탈해야 하며 죽어가는 것도 이맘쯤이면 그것이 주는 상실의 아픔이 다른 계절보단 배가 삼가 사가해야 한다는 무언, 혹은 묵시의 동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가을이면 더 슬퍼하라. 단풍 만발하는 이맘쯤 저런 애수의 통념에 꼭 산통 깨는 일이 생기더라. 거센 바람 한바탕 휘몰아치거나 가을비 한번쯤 쌔리 부어 그런 폼내기용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꼭 한번은 생기더라. 아침부터 비가 쌔리 붓더니만 화살나무 밑이, 꽃잎 반열반.. 2018. 10. 2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