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눈에야 허투루하다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런 세평이 어느 정도 실상을 반영하는 부분도 분명하지만, 나는 보기보다는 메모에 관한 한 나름대로는 치밀해서
요새는 그런 경향이 훨씬 줄어들기는 했지만, 상당한 메모광이다.
어느 정도인가? 어떤 책을 읽으면, 그걸 다 뽀개서, 키워드를 죽죽 뽑아 그것을 분류하고 메모한다.
이 키워드는 나중에 내가 기사를 쓰거나 논문을 작성할 때, 혹은 지금과 같은 블로그질을 할 때마다 필요한 자료 혹은 전거를 뽑아내는 고리가 되는데,
그렇게 내가 평소에 훗날 필요할지도 모른다 해서 메모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만큼 나는 메모에 관한 한 狂이다.
구양수歐陽修 필기인 《귀전록歸田錄》은 그 항목 하나하나를 전부 다 뽀개서 내가 훗날 필요할지도 모르는 지남이 될 만한 키워드를 일일이 붙여 다 독립해서 이미 10여 년 전에 짜개 놨다.
유감스럽게도 이 귀전록은 이후 단 한 번도 이용해 먹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이용하지 못하고 사장 위기에 처한 것들은 그냥 원전 한 대목씩 이용하는 것으로 하나씩 써먹으려 한다.
객설이 길었다.
그렇게 내가 2015년 3월 15일에 메모한 것 중에 아래가 있다.
부소산성광배 목수 목공 야금장 피혁장 가죽장 : 장인匠人 공인工人 [수정] [삭제]
2015.03.15 09:58:50
周禮 冬官考工記 總序에 이르기를 “무릇 나무를 다루는 장인이 일곱, 금속을 다루는 장인이 여섯, 가죽을 다루는 장인이 다섯이다(凡攻木之工七, 攻金之工六, 攻皮之工五)”고 했다.
攻을 鄭玄이 주하기를 “攻, 猶治也”라고 했다.
이는 내가 메모하는 한 방식이다.
부소산성광배 / 목수 / 목공 / 야금장 / 피혁장 / 가죽장 / 장인匠人 / 공인工人 이 바로 키워드다.
훗날 나중에 내가 저런 것들으로 소재 혹은 주제로 해서 기사나 논문을 쓴다 했을 적에, 저런 키워드 중 한두 개로써 내가 구축한 자료들을 검색해서 찾아내 써먹는다.
그렇다면 내가 저 키워드 중에 왜 '부소산성광배'라는 말을 굳이 집어넣었을까?
이 부소산성 광배는 내가 여러 번 이야기했거니와, 왜 저기서 저 키워드를 뽑았는지는 아래 논문에서 알 수 있다.
그랬다. 아래 저 논문에서 나는 저 부여 부소산성 출토 백제시대 금동광배에서 내가 새롭게 판독을 제시한 ‘하다의장치불何多宜藏治佛’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으니,
이 새로운 판독은 이 금동광배 혹은 그 금동광배를 장식한 불상은 하다의장 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경우 ‘治’라는 동사가 바로 금속이나 나무 같은 재료를 가다듬거나 주물해서 만들어낸다는 뜻이라, 그런 뜻으로 저 글자가 사용됐음을 보증하는 사례로써 바로 저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총서總序에 보이는 구절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석 “攻, 猶治也”를 써먹기 위함이었다.
실제 아마 아래 논문에서 이 구절을 내 주장을 받침하는 증거로 내 논문에서 제시했을 것이다.
참고로 역대 한문 주석서를 보면 저처럼 “A, 猶B也”라는 식의 설명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A라는 말은 B라는 말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의미가 아주 똑같다 할 경우에는 “A, B也”라 쓰고, 아주 똑같다 하기는 힘들지만, 매우 흡사하다고 할 적에 “A, 猶B也”라는 식으로 표기한다.
따라서 “攻, 猶治也”라는 말은 이에서 보이는 攻이라는 글자는 治라는 글자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나는 2016년, 주로 단국대 출신 고고미술사학도들이 주동이 된 한국문화사학회 라는 단체가 발간하는 기관지 《문화사학》 제45집에 다음 논문을 투고 게재했으니 (pp. 29~40)
‘法師’에서 ‘治佛’로 - 扶蘇山城 出土 百濟 金銅光背 銘文에 대한 再判讀 -
Redecipherment and interpretation of the inscription on the gilt bronze aureole excavated from Busosanseong Fortress of Baekje
그 국영문 초록을 전재하는 것으로써, 골자를 가늠한다.
199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결과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시대 금동 광배 1점이 발굴되었다. 그 뒷면에는 초서체 6글자를 새김했음이 나중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밝혀졌다.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새긴 이 글자를 보통은 ‘何多宜藏法師’라고 읽어 하다의장이라는 백제시대 승려가 이 금동광배가 부품으로 들어갔을 불상의 제작자 혹은 발원자였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번에 재판독 결과 ‘何多宜藏治佛’임이 드러났다. 글자체로 보나, 문맥으로 보나 이것이 확실하다는 것은 이 논문 결론 중 하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하다의장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 하다의장이 단순한 장인인지, 혹은 발원자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이런 재판독은 한일 고대사학계의 미스터리 혹은 논쟁 중 하나인 고대 일본의 하타씨 혹은 하다씨(秦氏) 유래가 어디인지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다씨가 한반도에서 유래하는 도래계 씨족임은 거의 모든 기록이 증언하지만, 그 출발이 백제 혹은 신라 중 어디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으며, 최근에는 신라라는 주장이 우세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판독은 사비시대 백제에 하다씨가 있었음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그것이 곧 고대 일본 하타씨의 뿌리임을 암시한다.
The Buyeo Nation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excavated a gilt bronze of a Buddhist image with six chinese characters inscribed on the back from Busosanseong Fortress of Baekje at Buyeo, the last capital of the kingdom in 1991.
The letters written in a cursive hand with a pointed tool a nail are commonly read among experts as ‘何多宜藏法師’, which means a Beopsa, Buddhist monk〔法師〕 named Hada-Uijang〔何多宜藏〕.
According to it he could be a maker or originator of the missing Buddhist image. But through minute redecipherment by the author the whole characters have proved to be ‘何多宜藏治佛’.
It means Hada-Uijang has made or originated the Buddha. Hada is his surname, and we can discover a new ‘Hada acln’ of Baekje.
These findings could solve a great mystery related with ancient Korea-Japan history. In ancient Japan there was a notable ‘Hada or Hata clan’, who distinguished themselves especially in arts and crafts.
According to all the records related the family originated from the Korean Peninsula.
Whether it comes from Baekje or Silla has caused controversy. However the new reading of the inscription on the gilt bronze aureole will certainly pave the way for the origin of the family.
The Hada or Hata clan in ancient Japan originated from Baekje.
백제, 부소산성, 광배, 하다의장(何多宜藏), 하타씨(秦氏)
Baekje, Busosanseong fortress, aureole, Hada-Uijang〔何多宜藏〕, Hada clan, Hata c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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