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서울 서대문 서울 독립문獨立門, Dongnimmun Arch, Seoul을 일컬어 흔히 이르기를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1894∼1896)이 성공하지 못하자 민족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건양建陽 원년(1896년)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뜻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광무 2년(1898년) 완성하였다.
라 하거니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걸 따지기 전에 저와 같은 설명은 역사학이며 문화재학 영역이랄 수 없다. 왜? 저건 개돼지도 교육이 필요없는 팩트인 까닭이다.
저런 설명은 특별한 연구에 말미암음도 아니요 당대에 이미 저와 같이 기술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인 까닭이다.
이제 내 의문은 저에서 출발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저 문이 개선문을 본떴음은 우수마발 근거가 필요없이, 또 꼭 파리 개선문일 필요도 없이 로마제국 이래 개선문은 다 저 모양이라 서구 전통에서 비롯하는 전승의 기념물인 저 개선문이 독립문과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개선이 어찌 독립이란 말인가?
나는 이 비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개선과 독립은 원인과 결과 관계도 아니요 비유도 아니며 실상 그 어떤 연관도 없다.
왜 개선문이 조선에 와서 독립문으로 둔갑했을까?
그럼에도 왜 서재필은 저 개선문을 짓고는 그에다가 독립문이라는 간판을 달았을까?
나는 저 발상의 근저가 몹시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저 무렵 개선문을 가능케 하는 전승은 조선을 둘러싸고는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청일전쟁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무참히 중국을 박살낸 일이다.
일청전쟁 승리는 일본으로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정벌하는 명분이 된 명나라 정벌 중국정벌의 꿈을 삼백년간이나 유예했다가 마침내 실현한 꿈과 같은 일이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쉽사리 망각하는 점이 있는데 일본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중국에 굴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삼국시대 이래 뻔질나게 중국을 드나들며 중국 황제한테 합법성을 인정받으려 발악하던 조선말기까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일본은 단 한 번도 중국에 고개 숙인 적이 없다.
우리가 등거리 외교라는 이름으로 시종 중국에 굽신거리던 전 정권까지도 일본은 단 한 번도 중국에 알랑거린 적이 없다.
본론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얘기 나온 김에 그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윤석열의 대 중국 행보는 한민족이 진짜로 중국과 맞짱뜨기를 작정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을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것이 파국으로 끝날지 잠깐 쇼로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저 윤석열 진짜로 희한한 사람이다.
그의 저런 행보를 둔 반대편 움직임도 주시해야 하는데 그의 저와 같은 중국 맞서기와 그에 따른 미국 일본과의 밀착을 파국 외교라고 몰아붙이는 점도 나는 수상쩍기만 하다.
저들은 입만 열면 민족자주 민족자결을 내세웠거니와 탈중국 행보를 저리 비판하니 언뜻 모순 같이 보이기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저 독립문, 아니 그 직접 모태가 된 개선과 그 직접 발단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대승한 일이며 따라서 저 독립문은 일본의 승첩기념비다.
어찌하여 일본의 승리가 개선이 되고, 그 개선이 또 어찌하여 조선의 독립이었는지 그 등식을 이끌어낸 서재필 이하 독립협회의 의식구조가 이상하지 않은가?
저것이 개선문이고 그 개선문이 일본의 대승을 축하하는 의미라면 어째 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는지를 해명하는 열쇄가 되지 않을까?
저 독립문이라는 글자는 이완용 글씨라는 당대 증언이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신빙할 만하고 또 그가 독립협회에 몸담은 것은 부인할 수 없거니와
그네들이 생각한 독립 나아가 그 출발은 청일전쟁에서의 일본의 대승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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