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상림리 동검 26점 자루는 그것을 보고한 전영래 선생 증언을 참고하면
자루와 칼끝이 다 같은 방향이었으며 한 뭉치가 그런 상태로 고스란히 지표 60센티미터 지점 지하에 묻혀 있었다 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 26자루가 한 다발이라는 뜻이며 한 아름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정식 발굴조사를 통해 보고된 것이 아니기에 이런 점들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나는 틀림없이 이 한 다발을 묶음하는 끈 혹은 그런 흔적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 청동 한 다발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관련 보고서를 세심히 훑어보지 않아 아쉽기는 하나,
나는 이 한 다발이 한 사람, 특히 성인 한 명이 아름 혹은 지게로 져서 나르는 최소한의 단위이자 묶음이었다 본다.
이는 무게를 달아보면 명확해지리라 본다.
이 묶음, 혹은 다발, 혹은 아름이 왜 중요한가?
그것이 왜 저 칼들이 이곳에 묻혔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저것들을 왜 아름 혹은 다발로 처리했겠는가?
어딘가에서 옮겨왔거나 옮겨가기 위한 직전 모습인 까닭이다.
양손으로 들고 가건 지게로 지고 가건 수송을 위한 흔적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써도 저들 청동칼이 재활용을 위한, 다시 말해 녹여서 다른 기물로 제작하기 위한 임시보관이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해진다.
저 무게 상당했을 듯하다.
양팔로 들고 옮기기에는 지나치게 무겁지 않을까 하며 지게로 지고 다녔을 듯하다.
혹 전체 무게를 측량하지 않았다면 한꺼번에 올려놓고 저울로 재어봐야 할 것이다.
암튼 그렇기에 청동칼들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추고 가지런히 있었던 것이다.
이 편을 끝내기 전에 저 두 번째 첨부 사진, 곧 장작지게를 보자.
딱 저거다!
저 개념이다.
26자루가 꼭 정해진 것이었는지 넒나듦이 있었을 법한데, 저게 왜 중요한가?
저 단위로 중고품들이 거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 previous article ***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4) 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제의용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4%B7-599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4) 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제의용
한국고고학, 이건 실은 전 세계 고고학도들한테 노골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제의 제례 봉헌이라는 말의 남발이 그것이라 이 친구들은 지들이 모르는 것은 덮어놓고 제의 제례 봉헌물이라 주장하
historylibrary.net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6) 새삐구삐한 중국 전국시대 칼들 (1) | 2025.03.14 |
---|---|
무덤 속 탈것은 덮어놓고 상여! 바이킹 무덤의 경우 (1) | 2025.03.14 |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4) 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제의용 (1) | 2025.03.13 |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3) 신차와 중고차 (0) | 2025.03.13 |
온몸이 상처로 재림한 리처드 3세, 그는 폭군일까? (0) | 2025.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