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제강점기의 심층이해43 일본 잃어버린 30년과 많이 닮은 한국 필자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과 그 다음 방문 때너무 달라져 있었던 것에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 방문 때는 일본의 버블 말기였는데일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끝도 없는 일뽕에 국가경쟁력도 매우 우수했고,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지나고 방문하니너무 상황이 달라져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30년을 지속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보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기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30년을 계속 하강한다면 필자의 경우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내리막만 본다는 것인데, 하긴 일본도 그 시대 버블 전성기를 목격한 세대가 지금 죽을 때까지 내리 내리막만 목격하고 있으니, 그쪽 전공투세대가 바로 필자의 세대인 셈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런 저런.. 2025. 9. 21. 로버트 레드퍼드 Out of Africa 노란 비행기, 그리고 안창남 세상을 뜬 로버트 레드퍼드는 필자 세대에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다. 요즘 젊은 분들에게는 "어벤져스" 악당으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역시 영화에 나오는 노란색 비행기의 비행 장면이 압권이다. 이 복엽기가 날던 시대가 바로 1920년대다. 영화를 보면 1차 대전이 끝난 후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확히 1920년대에 해당하며 같은 시대 조선에는 최초의 비행사들이 배출되는 순간이었다. 안창남이 동경에서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을 때아프리카에서는 저 노란색 비행기가 날고 있었던 셈이다. 아프리카의 모험가가 타는 비행기와 식민지 청년이 모는 비행기의 비행의 무게는 차이가 있었을까? 아마 비행기를 몰 때 느끼는 감정은 똑 같았을 것이다. 2025. 9. 18. 식민지시대 무리한 쌀의 이동: 일본 이외에도 이득을 본 이가 있었다 식민지 시대 쌀은 조선이 모자랄 정도로 쌀이 일본으로 이동해 간 것은 틀림없다. 20년대의 빈궁은 단지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니며이런 재해에도 불구하고 무리할 정도로 일본에 쌀을 유출해야 한 그 상황이 문제일 것이다. 이는 정상적 무역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므로, 이를 조선의 입장에서는 식민지적 상황이라고 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쌀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무리하게 이동하게 되면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본 이는 누구였을까? 일차적으로 조선의 쌀을 싸게 들여올 수 있는 일본의 소비자였을 것이다. 물론 그쪽도 농민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나 (편집자주...실제 싼 조선쌀이 들어오면서 일본 농민들은 망했다. 이 문제 역시 심각하다.) 도시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노동자층은 쌀 값의 앙등을 반기지는 않았을.. 2025. 9. 17. 1920년대의 이발기 세트 1920년대에는 이발기 세트, 이른바 바리깡과 그 세트를 파는 광고가 꽤 나온다. 물론 일제제품을 수입한 것일 테고, 이 이발기를 사서 아마 이발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나왔을 테고, 집에서 따로 장만하여 식구들 이발을 해주는 경우가 있었을지 어땠을지 모르겠다. 이발 관련 12종을 모두 합쳐 3원 50전이라고 하니 당시로서 적은 돈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이발기 세트를 필자의 기억으로 초등학교까지도 잡지 등에 광고가 종종 실린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발기 세트 12종 이것도 거의 비슷한 구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본적인 틀은 일제시대 20년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 [편집자주] *** 저 이발 세트가 맹위를 떨친 가장 큰 이유는 학생 두발 때문이었다. 남학생들은 빡빡머리였으니, .. 2025. 9. 17. 일제시대의 대학 전문부 1925년 당시 동아일보에는 위와 같은 기사가 나와 있다. 일본의 사립대생들이 모여 차별철폐를 외쳤다는 것이다. 무슨 차별 철폐일까? 바로 사립대 "전문부"에 대한 차별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전문부"는 무엇이관대 차별을 없애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 소식은 왜 조선의 신문에까지 실렸을까? 그 이유는 이 "전문부"가 조선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부는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전문학교, 대학예과와 동급 학교였지만, 정확히는 이와도 위상이 같지 않았다. 원래는 일본에서 전문학교를 대학령 발표 후 대학으로 바꿀 때 기존의 전문학교 학생을 새로 뽑는 대학생과 따로 교육하기 위해 두었던 것이 전문부인데이것이 전문학교 학생들이 다 졸업한 후에는 성격이 바뀌어 전문학교와 같은 교육과정으로 유지하되 .. 2025. 9. 17. 을축년 대홍수가 덮친 1925년의 대기근 1925년은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기억되지만 이 해에 수해가 오기 전, 봄에 이미 조선은 극심한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당시 지면을 보면 연일 기근 소식이며 구황을 위한 각종 사회 캠페인이 펼쳐진다는 기사가 나온다. 대홍수는 이런 기근의 와중을 덮친 셈이 되겠다. 한참을 굶다가 이번에는 대홍수가 덮쳤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살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왜 대기근이 오는가? 조선에서 일본 쪽으로 미곡의 수출은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부터는 이출移出이라 불렀다) 항상 조선 쪽에 쌀 부족을 낳았는데, 이 당시의 기근도 이와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근은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산미증식계획이 일본 측에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불리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이.. 2025. 9. 17. 이전 1 2 3 4 ··· 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