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紀는 근간이 記와 발음, 뜻이 같다. 그래서 세기世紀는 世記라고도 한다.
世紀 혹은 世記는 무슨 뜻인가? 순차별 전기라는 뜻이다.
순차는 무엇인가? 먼저와 나중을 구별하되, 먼저 무슨 직책에 있었던 사람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사람은 나중에 쓴다.
세가世家라는 말이 있다. 기전체 역사에서 이는 왕대별 주요 사건 일지다. 고려세가라 하면 반드시 그 순서는 초대 태조 왕건에서 시작해 순서를 밟아 마지막 공양왕까지를 기록한다. 세기가 무엇인지 이 세가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화랑세기花郎世記가 있다. 삼국사기 김대문 열전에 그가 지은 책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한데 그것을 베꼈다고 간주되는 남당 박창화 필사본에는 그 제목이 花郎世紀다. 둘 사이 미묘한 표기차이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나 같은 말이다.
이 화랑세기가 그 명칭으로 보아 화랑들의 열전일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필사본 출현 이전에 그것이 화랑의 순차별 전기일 것이라고 말한 이는 없다. 제목만 봐도 화랑세기는 화랑들의 단순한 열전이 아니라 화랑을 역임한 자들의 순차적 전기다. 실제로 드러난 필사본 화랑세기는 풍월주라고도 한 화랑이라 일컬은 특정 집단의 역대 우두머리들의 순차적 전기다.
그럼에도 지금껏 단 한 사람도 화랑세기花郎世記가 화랑들의 순차별 전기일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냥 막연히 화랑들의 열전 전기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도 세기世記라는 말을 유의하지 않은 까닭이다.
화랑세기를 이렇게 본 이는 오직 필사본 화랑세기 단 하나가 있을 뿐이다.
화랑세기를 이렇게 본 이는 단 한 놈도 없다.
화랑세기 진위 논쟁은 실은 이거 하나로 일치감치 끝났다.
(2017.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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