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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절터 중 목탑터 심초석 자리서 수습한 소위 창왕명昌王銘 백제 사리감舍利龕이다.
사리감이란 사리를 안치하고자 파서 만든 동굴 모양 굴이란 뜻이다.
한데 저 모양이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무덤 혹은 목관 단면을 빼다박았다. 소위 궁륭형 혹은 터널형이다.
탑은 늘 주장하듯이 부처님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다. 그러니 동시대 무덤 양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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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언제나 고분이라는 관점에서 돌파해야 한다. 이 관점을 알지 못하면 언제나 저런 사리장치는 미술사, 더욱 좁게는 불교미술사 영역을 맴돌 뿐이다.
탑은 고분이라는 관점에 접근해야 비로소 고고학이 된다.
나아가 그것은 불교 사상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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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생김새는 우체통이다.
(2017.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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