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여 능산리 절터 중 목탑터 심초석 자리서 수습한 소위 창왕명昌王銘 백제 사리감舍利龕이다.
사리감이란 사리를 안치하고자 파서 만든 동굴 모양 굴이란 뜻이다.
한데 저 모양이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무덤 혹은 목관 단면을 빼다박았다. 소위 궁륭형 혹은 터널형이다.
탑은 늘 주장하듯이 부처님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다. 그러니 동시대 무덤 양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탑은 언제나 고분이라는 관점에서 돌파해야 한다. 이 관점을 알지 못하면 언제나 저런 사리장치는 미술사, 더욱 좁게는 불교미술사 영역을 맴돌 뿐이다.
탑은 고분이라는 관점에 접근해야 비로소 고고학이 된다.
나아가 그것은 불교 사상사가 되는 것이다.
흡사 생김새는 우체통이다.
(2017. 3. 13)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世紀 혹은 世記와 화랑세기 (0) | 2021.03.18 |
---|---|
근대 도시 탄생의 증언록 《마산번창기》(1908) (1) | 2021.03.18 |
천전리 서석의 어사추於史鄒와 화랑세기의 보현普賢 (0) | 2021.03.17 |
니 꿈 내가 사께 팔아레이..문무왕을 낳은 건 팔할이 오줌이었다 (0) | 2021.03.16 |
달거리가 바꾼 인생, 남매의 음모 (0) | 2021.03.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