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나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줄에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번이고 소피 마르쏘 책받침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중 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利於病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이는 아마 명심보감에 나온 구절일 터이다)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 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 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 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五言古詩 하나 외지 못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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