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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치맛바람] (12) 딸을 죽였다고 사위 소손녕을 죽여 순장한 장모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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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죽였다가 장모한테 되치기 당한다.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에는 소항덕蕭恆德, 곧 蕭손녕遜寧이 열전이 그의 친형 소배압蕭排押 열전 바로 뒤에 붙었거니와,

이에 의하면 소항덕은 통화 원년(983) 제5대 황제 경종景宗 야율현耶律賢과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사이에서 난 월국공주越國公主한테 장가들어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어 주로 군사 분야에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물론 굴곡도 없지는 않아서 군사 발동을 잘못했다 해서 공신 칭호를 삭탈당하기도 한다. 

통화統和 14년(996)에는 행군도부서行軍都部署가 되어 포로모타부蒲盧毛朵部를 치고 개선했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그의 열전에는 이렇게 적었다. 

(소항덕이 전장에서) 돌아오자 (부인 월국) 공주가 병이 들었다. 태후가 궁인宮人 현석賢釋을 보내 병 간호를 하게 하였는데 소항덕이 그와 사통하니 공주가 분통이 터져 홍서하자 태후가 역정을 내고는 사사賜死했다.

간땡이가 부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오죽 장모가 열이 받았으면, 그 행동이 괘씸함을 넘어 역정을 내고는 죽여버렸겠는가?

한데...

이 일이 저쪽 송나라 쪽 기록인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에는 사뭇 다르게 채록되었으니 

그 권55에는 기유己酉년에 거란 공봉관供奉官 이신래와 와서 전한 당시 거란 국내 사정을 정리했으니, 이에 의하면

앞서 소개한 대로 경종과 예지황후 소작 사이에는 세 딸이 있고, 그 막내가 야율연수노延壽奴라, 당시 (죽을 때) 나이 27세로, 소패야蕭悖野(소배압) 모제母弟인 소긍두蕭肯頭한테 시집갔다가

연수노延壽奴가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한테 받쳐서 죽으니 황후 소씨蕭氏가 (노하여) 긍두를 줄에다가 달아 매 죽여서[縊殺]는 (딸 월국공주와 함께] 순장殉葬했다. [延壽奴出獵,為鹿所觸死,蕭氏即縊殺肯頭以殉葬。]

고 한다. 

요사 열전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둘은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둘은 거의 동시에 죽었다.

공주가 먼저 죽었지만, 사위 또한 곧바로 장모한테 죽임을 당한 까닭에 당연히 둘은 같은 무덤에 묻혔을 것이다. 

장모가 분노한 원인을 다르게 증언한다.

요사에서는 병든 딸을 간호하라고 자신이 파견한 궁궐 여인을 건드려서 장모가 분노가 폭발해 죽음을 내렸다 한 반면,

속통감장편에서는 굳이 자기 딸을 사냥에 데리고 나갔다가 사슴뿔에 받쳐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를 용서치 못해 액살해 버렸다고 한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합리적 혹은 타당할까? 난 모르겠다. 둘 다 아주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다만, 속통감장편 쪽은 그대로 적기는 곤란해서 요사 열전과 같은 분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손녕은 마누라를 죽이려 했으며, 그래서 죽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그 방식을 나름대로는 합법으로 가장한다 했지만, 결국 들통난 것이며, 그래서 장모는 그런 사위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야 그것이 다행히 저런 상반된 듯한 기록으로 남아서망정이지, 합법을 가장해 남편에 의해 죽어간 마누라, 마누라 혹은 장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남편 혹은 사위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하나다.

마누라 죽였다가 장모한테 되치기 당한다.

딱 이거다. 

돈 많은 장모? 사위는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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