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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조판서 인사발령 이틀만에 급서했다 해서 칭송받은 오재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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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순

 

정조실록에 의하면 그 16년, 1792년 12월 28일 임진일에 이조판서 정민시鄭民始를 체직하고는 오재순吳載純을 그 자리에 앉힌다. 당시 오재순은 66살 상노인이었지만, 적어도 몇 년은 더 써 먹을 체력은 된다 정조가 생각한 인사조치였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오재순은 허망하게 간다.

실록이 적기한 그의 졸기卒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원임 이조판서 오재순이 죽었다. 재순은 자字가 문경文卿이라 고 대제학 오원吳瑗의 아들이다. 풍채가 청수하고 차분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좋이 여기지 않았다.

영종英宗 임진년에 급제하고 상이 등극하자 내각에 들어와 이조·병조판서를 지내고 대제학을 역임했는데, 상이 그의 겸손하고 과묵함을 가상히 여겨 우불급재愚不及齋라는 호號를 내리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경전에 마음을 기울였고 행실이 지극히 독실하였다. 시문을 빨리 짓지는 못하였으나 문장이 간결하고 옛 정취가 있었다.

이때 와서 앓은 일도 없이 죽자 세상에서는 신선이 되어 갔다고들 하였다.

주의를 기울여 소화해야 하는 두어 가지가 있다. 

첫째 시문을 빨리 짓지는 못했다. 이는 당연히 시문을 빨리 짓는 일이 칭송받았지만 오재순은 미련곰탱이 같아서 절차탁마하며 머리를 쥐어짜는 타입이었다. 

둘째 앓는 일도 없이 죽다. 간단하다. 비름빡에 똥바르지 않고 생생하게 밥 잘 먹고 산뽀도 잘 하다가 각중에 확 갔다는 뜻이다. 당시 저 만한 세월을 살고 이렇게 훅 가면 본인도 좋고 남은 사람도 더없이 좋다. 이른바 돌연사였다. 

실록이건 어디건 누구 죽음을 전하면서 비름빡에 똥을 발랐다는 말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죽은 사람 없다. 특히 왕들이 더 그랬다. 

보통 왕들은 죽기 하루이틀 전쯤에 앓아 눕는다. 보통 왕들은 죽기 전에 장중한 유언을 한다. 내가 죽은 다음 즉각 세자는 내 관 앞에서 보위를 이을 것이며 블라블라. 

그 장중한 유언은 이내 문서화해서 승정원에서 정식 교서 형태로 발상과 더불어 반포반시된다. 

다 거짓말이다. 

왜?

우리 성상께서 비름빡 똥바르다가, 몇년 혹은 몇달을 횡설수설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승하하셨다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이렇다 할 건강 이상 징후도 없이 느닷없이 쓰려져서 세자나 고명대신을 불러다 놓고 블라블라 하시고는 그렇게 간다. 

임금은 그래야 했다. 

오재순은 돌연사했다 해서 칭송받은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이주화 선생이 오재순 관련 일화 하나를 논급해서 그에 발분해 따로 항목 하나를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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