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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거란의 치맛바람] (13) 남편은 도륙되어도 공주는 살아남는다

by taeshik.kim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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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거란 황제 성종으로 등장하는 야율륭서

 
이 경우는 사실 치맛바람이라기보다는 황제 혹은 황후의 권위라 봐야 한다. 부마도위에 책봉된 황제의 사위가 반란과 같은 불미한 일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해도 공주가 그에 직접 관련되지 않고서는 같이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거란 6대 황제 성종聖宗은 처첩한테서 14명에 달하는 딸을 둘었으니, 후궁 중 한 명이 대씨大氏가 있다. 보나마나 대조영한테로 거슬러 올라가는 발해 계통이라, 그는 딸 하나를 두는데, 이름이 장수長壽다.

당시 이름을 보면 불교에서 비롯한 전통과 더불어 장수를 기원하는 뜻 글자가 많은데 장수와 더불어 연수延壽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 공주는 엄마 격이 좀 떨어져서 처음에는 공주로 책봉되지는 못하고 그 아랫등급인 군주郡州가 되는데, 조선시대로 보면 옹주 정도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임해군주臨海郡主라 했으니, 임해라, 바닷가에 접한 고장이라는 뜻이라, 이는 아마도 그의 어머니 출신이 발해인 것과 연동하지 않나 한다. 나중에는 공주公主로 책봉된다.

야율장수耶律長壽는 다른 정통 공주가 보통 소씨蕭氏한테 시집가는 것과는 달리 대력추大力秋라는 남자한테 하가했다. 이 대력추 또한 볼짝없이 발해 계통이다. 

한데 이 부마도위駙馬都尉 대륙추가 그만 같은 발해 계통인 대연림大延琳의 반란에 연루되어 복주伏誅되고 만다.

예서 잠깐 대연림(?~1030)을 이야기하자면 발해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 7세손이라는 그는 거란 부수도 중 하나로 동쪽 여진과 고려 문제도 전담하는 동경東京을 관할하는 최고 지방장관인 동경유수東京留守를 보좌하는 부관 격인 사리군 상온舍利軍詳穩이었다.

이런 그가 태평太平 9년, 1029년 8월 3일, 유수留守이자 부마도위駙馬都尉인 소효선蕭孝先과 그 부인 남양공주南陽公主를 억류하는 한편, 호부사戶部使인 한소훈韓紹勛과 부사副使인 왕가王嘉, 사첩군도지휘사四捷軍都指揮使인 소파득蕭頗得을 죽이고는 반란을 일으킨다.

이 동경부를 근거지로 삼아 나라 이름을 흥요興遼라 하고, 연호는 천경天慶이라 하면서 독립국을 선언한다. 그 자신은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일컬었다. 

이 대연림의 반란은 거란만 아니라 거란을 주축으로 형성된 당시 국제질서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대연림 왕국은 이듬해 8월까지 1년이나 존속했다.

반란은 즉각 진압되어야 하지만 거란은 실패했다. 이미 거란이 기울기 시작한 징후를 감지케 한다.

이듬해 8월 25일, 내분으로 흥요국은 멸망한다. 대연림의 부장部將인 양상세楊詳世가 거란군과 내통하고는 요양부遼陽府 남문을 열어주면서 들이닥친 거란군에 포로가 되고 만다. 

흥요국은 대연림도 그렇고 주축이 발해 계통 사람들이었다. 황녀 야율장수耶律長壽 남편 대력추가 그에 휘말려 들어간 이유도 이것이다.

야율장수가 살아남은 이유는 확실치는 않으나, 발해 부흥을 표방한 남편과는 분명히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반역 혐의로 처단되고서 과부가 된 야율장수는 어찌되었을까?

요사遼史 공주표公主表에서는 남편이 복주되고서 소조고蕭慥古라는 사람한테로 개가했다 한다. 전통으로 황후를 배출하는 소씨 집안으로 개가한 것이다. 남편 등급이 발해계에서 정통 외척으로 높아진 것이다.

앞서에서도 보았듯이 거란에서는 개가가 금지된 것도 아니었고 사례가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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