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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거창 수승대搜勝臺 vs. 수송대愁送臺 논란에 부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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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칭 변경 논란은 나로서는 사건 전개를 전하는 이른바 제3자 관점에서 즐기려 했다. 다시 말해 저들이 무슨 결정을 하건, 또 그와 관련한 논박이 무엇이 오가건, 그 전개 과정만을 관망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두고 이런저론 논란이랄 것도 없지만, 이런저런 발언을 아니할 수 없고, 또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곡절이 있어 이참에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논란은 논점이 간단해서 현재 대한민국 명승으로 지정된 저 간판을 어찌 달아야 하는가 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실은 많은 고민을 유발한다고 나는 본다.

이 문제는 자칫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광풍처럼 몰아치는 이른바 과거사 청산, 개중에서도 부끄러운 역사의 청산이라는 그런 측면과도 자칫 어우러지는 측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우선 이 문제가 어찌해서 유발했는지 논하면 내가 아는 상식에서는 성락원 문제에서 비롯한다. 이 성락원을 두고 오죽 말이 많았는가?

이 문제를 이 자리서 새삼 짚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성락원이라는 데가 A라는 가치가 있어 명승으로 지정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A랑은 관계가 없다! 이런 사실(이건 사실이라 했지만 이 분야 전업하는 직업군에서는 알려진 정보였다)이 드러나자 문화재청에서 이참에 기존 명승으로 지정된 것들에 문제는 좀 없는가 해서 일괄 재조사를 했던 모양이며, 이 과정에서 느닷없이 수송대가 끌려들어가 저러한 명칭 변경논란으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안다.

간단히 말해 저 명칭변경논란은 성락원이라는 엉뚱한 짱돌이 던진 파동이다.


암튼 이런 조사를, 적어도 수승대에 관한 한(나머지도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다) 문화재청에서는 B라는 사람을 연구책임자로 하는 데다가 맡겼다. 이 B라는 사람은 올해 문화재위원회 재편 과정에서 천연기념물 명승 분야 업무와 관계되는 문화재위 분과에 위원으로 입성했다.

제반 과정은 생략하고 결정 혹은 예고사안만을 추리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에서는 현재는 수승대라는 이름으로 명승으로 지정된 저곳을 수송대로 바꾸기로 하고, 그런 잠정 결정을 공개했다.

이를 예고라 하는데, 보통 이런 사안은 저와 같이 우리가 할 작정이니 혹 우리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으니, 또 우리와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 기탄없는 의견을 개진해 주기 바란다 하는 그런 취지로 도입한 제도다. 보통은 한달을 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질질 끌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문화재위 심의를 바탕으로 우리가 조만간 저 이름을 수송대로 바꾸겠으니, 어찌 생각하느냐고 지금은 물은 상태다.

보통은 잠정 결정이 그대로 문화재위 최종 심의를 통과하고 문화재청이 도장 꽝 찍고 문화재청장 명의로 공포하면 그걸로 시행된다.


한데 이에 거창 현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우리는 못 받아들이겠다. 물론 현지 여론이라 해서 거창 모든 주민이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그럼에도 거창 현지에서 이런 예고 사안을 노골로 반대하고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에서 중요한 점은 왜 문화재위와 문화재청은 간판을 바꾸고자 했느냐다. 근거가 있으니, 이유가 있으니 바꾸겠다는 거 아닌다?

그렇다면 왜 현지에서는 반대하고 일어났는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위와 문화재청이 내세운 논리는 실로 간단해서 수승대라는 명칭은 퇴계 이황이 이곳을 방문하고 붙인 이름으로서 그 이전에는 수송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퇴계가 이리 이름붙였다고 해서 수송대라는 기존 명칭이 버려졌느냐 하면 그렇지는 아니해서 수송대라고도 하고 수승대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건 실체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는다. 이는 문화재청 문화재위도 알고 현지에서도 안다!!!!

맨 앞에 첨부한 안내판은 내가 4년 전인가 가서 찍은 것이다. 저에서도 분명히 수승대 역사를 수송대까지 포함해서 기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명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수승대를 수송대 역사까지 포함해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수승대 전 역사가 수승대임을 현지에서 알고, 그것을 충분히 기술했다!


그럼에도 굳이 문화재위와 문화재청이 저 중에서도 지금의 수승대를 떼어버리고 굳이 500년 전 아득한 선캄브리아후기로 거슬로 올라가서 수송대를 간판으로 내세우겠다는 그 저의를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으며, 동의할 수도 없다!

물론 이름이나 흔적을 떼어내거가 바꿀 수는 있다. 신체로 비유하면 그것이 암덩어리나 혹덩이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럴 때는 분명히 칼을 대고서 도려내야 한다. 이름을 바꾸거나 하는 사안은 이런 경우에 국한해야 한다. 명백한 오류이거나 그것이 실상을 오도한다고 판단할 때 그때는 얼마든 그런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승대를 대체한 수송대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가? 어불성설이다. 이하는 내가 다른 데서 이 사안과 관련해 표출한 생각들을 다시금 정리한 것이다.

수송대로 돌려야 한다고 하지만, 그 명칭이 오래도록 쓰인건지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삼국시대 운운하지만 내가 삼국시대에 저곳을 수승대로 불렀다는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기록이 없다.

어차피 있는 놈들이 기생 불러다 파티하는 놈들이 지맘대로 붙인 명칭인 것이고, 그 명칭이 수승대 이전에는 뭐였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의 수승대는 여러 누층한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그 누층하는 역사 전체를 온축蘊築이라 하며 그 온축은 시간과 공간을 양대 축으로 삼는다.

그 온축 중 퇴계를 분기로 갈라 퇴계 이후를 혹덩이 암덩이로 보고 그 이전을 원형이라 해서 그것만을 떼어내 보존할 수는 없다.

원형은 환상이고 그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다. 그 원형을 찾아 이른바 저 지형이 생겨난 지질시대로까지 거슬로 올라가야겠는가.



문화재는 현재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과거 어느 시점을 순수 원형이라 해서 그것을 지고지순한 그 무엇으로 설정해 그것만을 순수한 것이라 해서 지킬 수는 없다.

이번 명칭 변경 방침은 한국문화재계에 뿌리깊은 원형순수주의 그 발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락원에서 튀긴 똥물이 엄한데 파도를 친데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 우리가 유의할 점은 지금의 수승대는 퇴계의 유산이라는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장식한 경관 중 계곡 복판에 떡하니 자리잡은 거대한 바위덩어리 천지사방에는 무수한 각자刻字가 있으니, 지금이야 이런 행위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겠지만, 그것이 뛰어난 경관을 형성하는 조건임은 두말이 필요없다.
한데 이 무수한 각자는 어찌해서 등장했는가? 퇴계 때문이다.

퇴계가 한 소리 해 놓으니 이후 후학들이, 혹은 그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후생들이 너도나도 수승대로 밀려들 때마다 기술자들을 불러다가, 혹은 농민들을 동원해 돌을 찍어대고서는 방문록을 남겼으니, 내가 자세히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저 각자 거의 대부분은 퇴계 이후의 소산이다.

다시 말해 퇴계가 수승대다! 선언하고 나니 너도나도 달라들었고, 그래서 그 명성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그가 수송대를 대체하고 새로 지은 수승대라는 명칭에는 이곳 역사를 논할 적에 이리도 중요한 획기를 이룬다. 이런 수승대 역사에서 그 전시대 수송대로 돌리는 일은 퇴계 이후 수승대 역사의 말살일 수도 있다. 명칭 하나 바뀌다고? 이렇게 안이하게 접근할 수는 없다.

내가 왜 문화재는 현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그토록 목이 터져라 외치는지, 그 극명한 보기가 바로 이번 사태 논란이다.

혹자는 저에 앞서 왜 현지 여론을 묻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래 이 점에서는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위원회도 저런 반발을 생각하지 못한 패착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건 부차에 지나지 않는다.

왜 저들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런 막연한 믿음에서 출발한 문화재정책이 외려 말살한 역사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실은 아찔하다.

기타 이 안건과 관련해서는 다른 사안도 있고, 그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관계자가 반박을 했지만, 이 문제는 내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밝히고는 적어도 여기서는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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