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귀족제"라고 보는 관점이 아직도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번 이 블로그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는데,
귀족제라고 보는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귀족제로 보는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아마도 음서제라고 생각하는데,
음서제가 어느 정도로 성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려사회에서 과거제에 의해 출사한 인물들이 어느정도로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식년제 과거로 34명의 급제자를 전 시대에 걸쳐 (무신집정시대의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꼬박 꼬박 배출하고 있었고,
과거제란 귀족제와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
귀족제라는 것을 인정하려면,
필자 생각에는 이렇다.
과거제를 일체 무시한 출사자들이 정계의 정상부를 차지하고,
그 아래에 과거제 급제자들이 일종의 "도필리"로서 행정 실무만 담당하는
그런 모양이라면 인정할 수 있겠는데,
단순히 음서제로 출사한 집안이 많다?
그것만으로 고려사회가 귀족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집안의 벌열이 문제라면,
조선전기의 윤씨 집안도 문제가 될 것이고,
조선 후기의 장동 김씨는 어떤가?
과거제로 출사한 사람들이 고려정계를 장악했는가 아닌가가 필자가 보기엔 훨씬 중요하고,
만약 과거제로 출사한 이들이 고려정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면,
음서제 출사자들이 있건 없건 간에 그 사회는 조선시대-사대부사회와 별 차이가 없는 사회다.
전제왕권하의 귀족제라면 대략 일본의 헤이안시대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이 시기에는 중앙 지방귀족들이 과거제 같은 행정 고시를 통해 등용되었던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짧은 시기는 있었다).
고려시대가 일본 헤이안 시대처럼 귀족제 사회라고 보는가?
필자는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묶어서 이해해야 하는,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 사회이다.
일본이 12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사무라이=무가"들의 시대였듯이,
한국사는 11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사대부사회=문인 관료"의 시대인 것이다.
고려시대는 절대로 귀족제 사회로 볼 수 없다.
과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그 과거제로 등용된 인물들이 중앙정계를 주름잡고 있었던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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