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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14] 랜선 도슨트: 텐트-하피의 미라 형태 석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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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환 이집트학 박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14]
랜선 도슨트: 텐트-하피의 미라형태의 석관 

 

 

 


오늘은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토착 왕조였던 제 30 왕조(기원전 380-332년) 혹은 그리스 지배기 초기(기원전 332-30년)에 제작된, 텐트-하피(Tenet-hapi)라는 여인의 검은색 현무암 석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석관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 소장되어 있는데 2023년 5월 개관하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이 석관의 정교한 복제유물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폭 길이 높이가 각각 60 x 185 x 34센티미터인 이 석관 세부사진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는데 세부묘사가 매우 아름답고 이집트의 다양한 상징들이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으므로 꼭 한번 접속하셔서 나머지 설명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링크: https://collections.louvre.fr/en/ark:/53355/cl010027593

 

우선 고대 이집트의 관(棺: coffin)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2160년)에는 직사각형 석관이 주로 발견됩니다. 

 

이후 중왕국 시대(기원전 2055-1650년)부터는 같은 모양의 목관이 도입되었으며 표면에는 당시의 장례주문 모음집인 『코핀 텍스트』(Coffin Texts)와 함께 망자를 위한 각종 봉헌물과 부장품의 이미지가 새겨지거나 그려졌습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로 접어들면서 미라의 형상을 한 관이 목재로 혹은 석고를 입힌 천을 여러 겹 겹쳐 형태를 만드는 방법(cartonnage)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때 미라의 머리 부분에는 가발을 쓴 망자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조형되었습니다. 

 

텐트-하피의 석관 역시 이런 신왕국 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미라 형태(mummiform)로 만들어졌습니다만 얼굴 부분이 인체비례에 맞지 않게 크게 형상화되었는데 이것은 후기왕조 시대(기원전 664-332년)의 양식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석관 주인이 여성인 것을 고려하여 통상 망자의 턱에 붙여지는 끝이 둥글게 말린 오시리스(Osiris)의 수염은 생략되었습니다. 

 

후기왕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텐트-하피의 석관과 같이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든 육중한 석관이 등장했는데 기원전 2세기에도 이런 형태의 석관이 발견되며 현무암 이외에도 화강암 석회암과 같은 석재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이때부터 미라 형태의 관의 바깥쪽과 안쪽이 여러 단(段: register)으로 구획되었는데 이렇게 단으로 구획된 각 “장면”(scene)에는 장례와 관련된 신들의 형상이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서 발췌한 주문 및 삽화 등이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관에 어떤 모티프를 포함시킬지는 망자의 필요나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취사선택되었기 때문에 표준적인 양식이나 관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텐트-하피의 석관의 경우, 표면과 내부에는 상형문자 텍스트와 함께 신들과 망자의 형상이 저부조(bas-relief)로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보존상태가 매우 좋습니다만 발 부분과 기단부의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무릎에 해당하는 부분에 새겨진 텍스트 역시 일부 훼손되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굉장히 많은 형상과 텍스트가 석관 전체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텐트-하피가 수천 년 뒤에 자신의 관을 감상할 우리들에게 – 아마 망자는 자신의 관이 이런 운명을 맞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려고 자신의 관을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한 것은 아닙니다. 

 

주지하시는 것처럼, 석관 속의 모든 형상과 텍스트는 미라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그녀가 내세에서 행복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주술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새겨졌습니다. 

 

아무튼 이 석관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도상(圖像: iconography)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선 석관 외부부터 살펴보면, 정수리 부분에는 뿔에 태양원반을 이고 있는 암소의 모습을 한 하토르(Hathor) 여신이 봉헌탁자 앞에 서 있는 모습이, 그 아래에는 매의 날개를 단 신성갑충(神聖甲蟲: scarab)이 태양을 밀어 올리는 모습이 각각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애(性愛)와 다산의 여신인 하토르는 암소 혹은 돌무화과(sycamore) 등으로 표상되는데 장례의 영역에서는 명계로 여행하는 망자를 돕고 명계에 도착한 망자를 맞아들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편, 신성갑충은 케프리(Khepri), 즉 “아침의 태양”을 상징하는데 이집트인들에게 “아침의 태양”은 매일 저녁 죽음을 맞은 후 아침에 찬란하게 부활하는 존재였으며 이런 믿음이 사생관(死生觀)에 반영되면서 망자와 “아침의 태양”을 동일시한다면 망자도 태양처럼 새롭게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석관의 가슴과 배 부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망자의 혼(魂)인 “바”(ba)가 위의 태양원반(sun disc)과 아래의 신성갑충, 즉 아침의 태양 사이에 위치하여 생명과 부활의 힘이 깃들어 있는 태양광선을 쐬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왼쪽에는 네프티스(Nephthys) 여신이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ankh), 즉 고리 달린 십자가와 “안정”(stability)을 상징하는 “제드”(djed) 기둥이 합쳐진 기호를, 오른쪽에는 이시스(Isis) 여신이 “생명의 숨결”(breath of life)을 상징하는 “부푼 돛”을 각각 “바”를 향해 들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시리스 신화」(Osirian Cycle)에 따르면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세트(Seth)에 의해 살해된 오리시스의 시신을 수습하여 미라로 제작함으로써 오시리스가 부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도상은 한편으로는 태양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오시리스로 동일시되는 망자의 안전한 부활을 주술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채택된 것입니다.


다리 부분에는 미라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적출된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호루스의 아들들”(Sons of Horus)이 묘사되어 있는데 왼편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임세티가 생명력(life force)를 상징하는 “카”(ka)를, 그 아래에는 자칼의 모습을 한 두아무테프(Duamutef)가 영혼을 상징하는 “바”를 양손에 들고 서있는 모습이, 오른편에는 비비 원숭이의 모습을 한 하피(Hapy)가 심장을, 그 아래에는 송골매의 모습을 한 케베세누에프(Qebehsenuef)가 망자의 육신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카”와 “바,” 그리고 심장과 육신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여겼는데 이런 요소들이 죽음 후 다시 통합되면 망자는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랫단으로 내려가면 왼쪽에는 앉아 있는 명계의 신들 혹은 판관들을 향해 망자가 가슴에 한 손을 얹어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 오른쪽에는 망자가 서서 오시리스를 비롯한 신들에게 경배를 드리는 장면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발치에는 양쪽 모두 자칼의 형상을 한 아누비스(Anubis)가 처마돌림띠(cornice) 장식을 한 사당 위에 앉아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망자를 보호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편, 석관의 측면에는 다양한 신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데 왼쪽에는 저녁의 태양신 아툼(Atum) · 명계의 지배자 오시리스· 하피·아누비스·케베세누에프·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Horus) ·  지혜와 문자의 신 토트(Thoth)·저승길을 여는 역할을 담당하는 길잡이 신 웹웨아우트(Wepweaut) · 주술의 신 헤카(Heka)· 아누비스 ·  땅의 신 게브(Geb) ·  그의 배우자인 하늘의 여신 누트(Nut)· 임세티의 수호여신인 이시스 ·  하피의 수호여신인 네프티스가, 오른쪽에는 한낮의 태양신 레-호라크티(Re Horakhty)·아침의 태양신 케프리 ·  임세티 ·  아누비스 ·  두아무테프 ·  호루스 · 웹웨아우트 ·  아누비스· 대기의 여신 테프누트(Tefnut) ·  두아무테프의 수호여신인 네이스(Neith) ·  케베세누에프의 수호여신인 셀케트(Selqet)가 각각 새겨져 있고 이들 앞에는 석관의 주인인 망자와 그녀의 “바”가 손바닥을 앞으로 편 채 양손을 들어 올려 이들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단부 앞부분은 훼손되었습니다만 양 측면에는 돌무화과 나무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하토르 여신이 망자와 그녀의 바에게 시원한 물과 그늘을 제공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석관의 뚜껑 안쪽에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의 여신 누트가 나체의 모습으로 양팔과 양다리를 뻗어 망자의 몸을 감싸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밤의 태양신을 품어 잉태한 후 아침에 새로 탄생시키는 여신의 신격을 시각화한 것으로서 이때 망자는 부활하는 태양신과 동일시됩니다. 

 

누트의 머리 위에는 “태양의 순환주기”(solar cycle)와 “영원”(eternity)을 상징하는 “셴”(shen) 기호 3개가 일렬로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구현될 영생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석관 본체의 내부에는 “서쪽”을 상징하는 “이메네트”(imenet) 기호를 머리에 이고 있는 “서방(西方)의 여주”(Lady of the West)가 나체의 모습으로 망자를 품어 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는데 이때 “서방의 여주”는 명계에 무사히 도착한 망자를 맞이하는 하토르 여신과 동일시됩니다. 


결론적으로, 텐트-하피의 석관은 각종 상형문자 텍스트와 이집트의 신들, 그리고 석관의 주인과 그녀의 “바”가 저부조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며, 동시에 장례의 영역에서 활약하는 신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생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의 형태 및 도상의 변화, 이집트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도 중단 없이 전승된 장례풍습 등을 한눈에 모두 살펴보실 수 있는 매우 진귀한 유물입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고대이집트 #석관 #텐트하피 #사자의서(202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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