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써서 제 주군한테 바친 시기가 1513년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군주란 모름지기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훈육담으로 일관한다.
한데 이 상소문집은 이내 금서로 지정되어 버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군주 혹은 군주의 통치론 비밀을 폭로했다 해서였다.
신하된 주제에, 혹은 퇴임한 신하가 감히 군주의 비밀을 폭로하다니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그 내용이라 해 봐야 암 것도 아니다. 국가를 통치하고 신민을 이렇게 다루어야 하며 군대는 이렇게 양성해야 한다는 통치론 일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담론은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금기였고 그런 까닭에 이런 논의는 언젠가는 공론화할 주제였다.
한데 그 내용이란 걸 동시대 동아시아로 옮기면 저와 같은 논의는 전연 새로울 것도 없었으니, 실상 동아시아 저술이란 그 근간이 통치론이라 시경 서경 주역부터가 모조리 통치론이었고 논어 역시 그러하며 노자도 군주는 통치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정치학서였다.
이후 맹자 상군서 장자 순자 한비자 등등 모조리 자신이 군주가 되어 신민을 이렇게 통치해야 한다는 논설집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서양 사회 맥락에서만 혁명이었고 동아시아로 넘어오면 에게게? 이게 뭐야 하는 구닥다리 언설집에 지나지 아니했다.
하지만 그것이 서양사회에선 군주의 비밀을 폭로한 저작이라 해서 혁명으로 취급되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서양에선 군주론 이전에 저와 같은 저작이 없다. 우리한테는 이미 수천년전부터 일상이 되어버린 군주론이 저짝에선 1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하긴 뭐 금속활자만 해도 저짝 구텐베르크 그것도 세종보다도 늦으니 말이다.
운때를 잘 만나야는데 그 운때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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