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7년 계축(1793) 4월 8일(경오)
17-04-08[03] 갓난 옹주의 태를 내원에 묻다
갓난 옹주翁主의 태胎를 내원內苑에 묻었다.
우리 나라의 옛 고사에 왕자나 공주·옹주가 태어날 때마다 유사有司가 태를 묻을 곳 세 곳을 갖추어 올려 낙점을 받아서 안태사安胎使를 보내 묻곤 하였다.
그런데 영종 갑술년에는 명하여 군주郡主의 태를 묻을 적에 안태사를 보내지 말고 다만 중관中官을 시켜 가 묻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을유년에 태를 담은 석함石函을 경복궁의 북쪽 성 안에서 얻고서야 비로소 중엽 이전의 옛 규례는 내원에 묻었음을 알았다.
그리고는 명하여 앞으로 태를 묻을 때는 반드시 내원의 정결한 땅에 묻도록 하였었다.
그런데 이 때에 이르러 유사가 옹주의 태 묻을 의식 절차를 품하자, 상이 선왕조의 수교受敎를 준행하여 이 날 주합루宙合樓 북쪽 돌계단 아래에 태를 묻게 하였다.
【원전】 46 집 381 면
【분류】 왕실(王室)
***
왜 건물지를 발굴하면 담장이나 계단 아래서 소위 말하는 지진구 진단구가 나오는 줄 아는가?
이런 기록 찾아나 봤나?
제발 헛소리들 고만 좀 해라.
안태安胎 혹은 장태藏胎, 혹은 태실胎室, 태항아리[태호胎壺] 등등 도대체 뭘로 공부를 했는가 말이다.
묻은 장소 잘 봐라.
첫째 궁안이다. 둘째 계단 밑이다!!!!
이를 일반 사대부가 가정집으로 확대하면 답 나오잖아? 안 나오니?
율곡이 증언한 선조 사례도 있고 도대체 뭘 어떤 기록들을 들이대야 믿는단 말인가?
주합루 계단 파면 저 태항아리 나온다.
어케 묻었나? 볼짝 없다. 계단 돌 들어내고 생땅 파내서 묻었다. 그러고 다시 돌 덮었다. 그리 되면? 고고학도들은 뭐라 해석하겠어? 주합루 계단 만들면서 만들어 넣었다고 할 거 잖아?
나오면 또 헛소리 하겠지.
주합루 만들면서 진단구로 넣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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