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교수께서 요새 시루 타령이 한창이시라, 그러면서 한국음식문화사 관련 섭렵에 열혈이시라, 그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내 글 중 하나로 경주 천마총 산초를 새삼 거론하고자 한다.
문제의 글은 지금은 충북사학회로 이름을 바꾼 충북대학교 사학회에서 내는 역사학 전문잡지로 당시 내가 이 글을 투고한 2009년 무렵만 해도 명맥 유지가 위태로울 때라,
서울역사박물관에 근무하다 제주대학교로 옮긴 충북대 사학과 출신 김영관 교수(얼마 뒤 충북대 사학과로 옮겼다)가 그걸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할 때라, 나한테까지 논문 제출 의뢰가 왔었던 것이니
그 무렵 이 잡지에 두세편 논문을 거푸 투고한 계기가 김 교수와의 이런 인연에서 비롯되었음을 위선 밝혀둔다.
문제의 논문 서지사항은 아래와 같다.
설림(說林) : 천마총(天馬塚) 출토 곡립(穀粒)의 정체
김태식
발행기관 : 충북사학회(구 충북대학교 사학회)
간행물 : 충북사학 22권0호
간행물구분 : 연속간행물
발행년월 : 2009년 02월
페이지 : 125-150(26pages)
저 논문을 쓴지 하도 오래라, 내가 다시 내 글을 숙독해야 하겠지만, 아마도 당시는 내가 도교 약물에 심취하던 때라, 그것을 증언하는 자료로 강조하는데 주력하지 않았나 싶다.
결론 중 하나를 보면 저 산초가 발견되니, 천마총에 묻힌 사람은 아마도 산초가 익어가는 시절, 그러니깐 늦여름이나 가을쯤에 묻히지 않았을까 했으니
이 역시도 물론 반론은 가능하니, 저 무렵에 산초 장아치를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까닭이다.
더불어 이것이 담긴 그릇이 금동용기임을 볼 적에 산초주를 위한 재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거니와, 천마총 50주년이라 해서 올해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이런 데 대한 재탐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네 학계 습속 보면 기대 안한다. 맨 옛날 발굴단원 불러다가 회고담이나 듣고 축조기법이 어떻고 하는 타령밖에 더 일삼았겠는가?
이 산초는 주된 기능이 말할 것도 없이 조미료다. 특히 생선 비린내라든가 하는 음식 재료가 주는 역한 체취를 감쇄하는 조미료로 이종사촌인 제피와 더불어 인기가 높으니, 물론 이것이 지금 사정이지만, 그때라고 조미료라는 기능에서 한발짝 비켜나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아마 앞에 전문을 첨부한 논문에 언급이 있을 텐데, 우연히 오랫동안 경주연구소에서 일한 이은석 선생(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저와 같은 분석 결과가 있음을 듣고는 그 이야기 딱 하나로 일필휘지로 써내려갔으니,
다행히 그 무렵에 내가 만든 온라인 학술문화단체 문헌과문물에서 산초와 제피 관련 엄청난 토론이 있었고, 그에서 적지 않은 관련 사료 축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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