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해방전후사란 남북한의 대립을 전제로 놓지 않고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남북한의 대립을 전제로 놓고 이에 대해 어떤 입장에서 설 것이냐에 따라 해방전후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결정된다.
만약 지금 남한과 북한 둘로 나뉘어 분단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해방전후사와 친일파 문제는 이렇게 시끄러울 리가 없다.
어느 쪽이 이겼건 다 끝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해방전후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남북관계, 특히 2023년 현재 남한과 북한이 어떤 모습으로 귀착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해방전후사의 문제를 역규정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연구된 해방전후사를 바탕으로 현재의 남한과 북한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일단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고, 설령 맞다 해도 그렇게 연구된 해방전후사는 지금의 남북한 사회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2023년 현재 깽판을 치고 있는 쪽은 당연히 해방전후사도 깽판을 치고 있다는 시각이 더 맞을 가능성이 높고,
2023년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쪽은 당연히 해방전후사도 그런 시각에서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성공했다면 그 성공의 싹은,
해방전후시기에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북한이 지금 깽판을 치고 있다면,
그 깽판의 싹은 이미 해방전후시기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역사가의 몫일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단한다.
현재가 과거를 규정한다.
"History is a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E. H. Carr의 말이다.
2023년 현재, 해방전후사는 당연히 남한의 입장에서 다시 검토되고 쓰여져야 한다.
*** Editor's Note ***
필자가 말하는 저 논지는 문화재에 대해 내가 매양 하는 말과 궤가 같다.
마찬가지로 문화재 역시 철저히 현재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창건기에서 내려오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서 올라가는 역사를 쓰야 한다.
원형? 웃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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