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구리가 모자라다 보니 청동기시대에도
청동검 대신 돌로 만든 석검石劍, 나무로 만든 목검木劍, 쇠로 만든 철검鐵劍 등으로 검신劍身을 만든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아마 밖에서 보면 칼집만 보일 터이니 어차피 쓰지도 않는 검이라면 돌이건 나무이건 쇠이건 차이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나온 군담소설인 헤이케 모노가타리[평가물어, 平家物語]를 보면,
주인공 다이라노 기요모리[평청성, 平清盛]의 아버지 다이라노 다다모리[평충성, 平忠盛]이
천한 무사 출신이라는 신분을 넘어 우리로 치면 당상관쯤 되는 덴죠비토[전상인, 殿上人]가 되어
덴노가 있는 궁에 들어갔을 때 그를 시기한 귀족들이 그를 암살하려하자,
칼을 차고 들어가 경계하여 이를 쫒는데,
이를 본 귀족들이 감히 어전에서 칼을 차고 들어왔다고 꾸짖자,
자기 칼을 쓱 보여주는데 '목검에 은박銀箔을 입힌 칼[銀箔の木刀]'이었다고 한다.
이를 본 덴노가 어전에 칼을 차고 들어오면 안 된다는 규율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자기 목숨도 지켰으니 현명한 일이라고 극찬했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칼집 안에 든 칼이 목검으로 그 위에 '은박'을 입혔다는 것이다.
우리도 세형동검細形銅劍 칼집 안에 목검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과연 생짜 나무 칼을 넣어놨을까?
뭔가 금속제일 것처럼 위장을 했을 것 같다.
뭘 발라놔서 칼처럼 보이게 했을려나?
***
[Editor's Note]
아래 사진을 본다.
1998년 6월 9일 공개된 경북 경산 임당동 택지개발지구 발굴 A.D. 1세기 무렵 현악기와 칠기,동검류 유물. 이 동검에 목제 칼집이 보인다.
맨오른쪽이 조유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그 옆이 신형준 당시 조선일보 기자, 가운데 흰 가운은 아리까리, 그 다음이 아이고 이 양반 이름이 생각?? 강대일이다. 당시 연구소 보존처리 담당이었다가 훗날 부여로 튀어 교수질을 하셨다. 전통문화학교로 갔다가, 전통문화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평가물어 #헤이케모노가타리 #세형동검 #위세품 #위세용칼 #목검 #나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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