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 홍대용이 '과학자' 곧 Scientist였는지는 둘째치고, 그를 '과학자'라 부르는 걸 그가 들었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우선 "과학자란 무엇이오?"라고 물었겠고, 그 뜻을 어설프게 알면 화를 냈겠으며, 간곡한 설명이 곁들여진다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저었을지 모른다.
홍대용, 그의 고향 마을 산자락에 세워진 '홍대용과학관'에 가면서 든 생각이었다.
천안 장산리, 눈이 비가 되어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이었다.
홍대용의 생애, 그의 사상, '과학' 체험기구, 천문 관측 같은 데서 보이는 우리 조상의 과학정신, 태양계의 구성과 별자리...과학관 안은 이런 구성이었다.
소행성 이름으로 붙을 정도로 위대한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을 기리면서 어린이들에게 우주,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비교적 뚜렷했다.
흐음. 나름대로 재미있긴 했지만, 어쩐지 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담헌의 삶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적 면모가 없는 건 아니다.
혼천의를 만들고 개인 천문대를 만들어 하늘을 관측했으며, 허자와 실옹의 문답을 통해 허학 곧 성리학(?)에 빠진 자들을 규탄하고(과연?),
지전설과 우주무한론을 주장하고, 베이징에 가서 서양 신부들과 천문학을 주제로 대화하고 파이프오르간을 쳐 보이는 그 장면 하나하나는, 조선의 선비가 그랬다기엔 퍽 새롭지 아니한가.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근대 과학의 싹이라고 해석해도 괜찮은 것일지, 이건 고민이 필요하다.
과학사상가나 과학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말 그대로의 '과학자'라고 담헌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이는 꼭 담헌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실험이나 관찰을 많이 했고 그것이 이후 과학 발전에 큰 토대가 되었지만, 그를 '과학자'라고 인정하는 이는 드물다고 한다.
그는 물질적 증거 없이 추론으로 논리를 세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지만, 하여간 이 어마어마한 건물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고민을 안겨주는 전시를 보고 나오려니, 바로 근처에 담헌의 생가터가 있다는 게 아닌가.
굳이 차를 탈 필요도 없는 거리라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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