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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우,
잡곡농경지대인 황하유역과
도작 지대인 양자강 유역을 비교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돼지 사육이 훨씬 전문적이었다.
돼지우리를 설치하고 키우기 시작한 것도 황하유역이며,
오래된 사육돼지의 흔적도 황하유역이 더 많다.
한반도는 어떨까?
한반도 남부지역은 사육돼지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다.
돼지사육은 잡곡지대인 남만주 일대의 고구려-부여 문명에서 훨씬 흥했을 것이다.
왜 도작지역보다 잡곡지대에 돼지 사육이 더 많았을까?
사람이 무엇을 먹고 그 부산물이 무엇이 나오는가 하는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잡곡을 재배할 경우,
돼지를 사육하는 데 쓰이는 사료감이 훨씬 많이 나왔으리라 보는 것이다.
쌀 농사보다 잡곡 농사가
돼지키우기가 더 유리했을리라 보는 것이다.
돼지 사육은
고구려 부여가 삼한보다 더 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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